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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훈 [별과 추억과 시]

작년에 노래를 들으면서 가장 기뻤던 일 중 하나였다. 22년 봄햇살을 받고 싹을 틔운 앨범인데, 지난가을 낙엽이 지는 걸 좇다 우연히 발밑에서 찾아내었다. 10대의 추억을 따뜻한 두 팔로 한아름 담아낸 앨범, 신지훈의 정규 1집 별과 추억과 시다.

밤하늘을 수놓는 별무리들은 대개 까마득히 멀리 떨어져 있어서, 우리가 보는 빛의 모습은 수십년은 족히 된 소싯적의 잔영인 경우가 다반사다. 예를 들면, 물고기자리에는 지구로부터 40광년 정도 떨어진 별도 있고 400광년 정도 떨어진 별도 있다. 그렇지만 이 별들은 모두 4등성으로, 우리 눈에는 비슷한 밝기로 보인다. 이 앨범은 신지훈이 10대에 보낸 기억을 추억하고 있지만, 노래의 양식은 그녀가 보낸 10대의 시대상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유재하와 이문세, 김광석 같이 밝게 빛을 내는 거성의 별자리가 가장 먼저 보이고, 조금 더 눈을 적응시키면 보다 가까이에 이들을 보고 항해하는 AKMU나 소녀감성을 노래하는 우효의 모습 등도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가장 가까이에서 반짝이곤 있지만, 마치 적색편이 현상이 일어난 것처럼 8~90년대의 색깔로 조금 익어 있다.

구름 타고 멀리 날아에서는 이영훈이 담당한 영화 보리울의 여름 OST가 떠오른다. 그가 이문세와 함께 수많은 명곡을 만들어냈던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의 이름을 떠올리는 일은 필연적이었을 지도 모른다. 보컬을 자그마한 악기들이 졸졸 쫓아다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나도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구름 타고 멀리 날아''비가 되어 내릴래요' 하고 따라 부르게 된다.
두 번째 타이틀 밤의 창가에서는 영화 짱구는 못말려 어른제국의 역습의 OST가 생각난다. 악기 구성이나 코드에서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영화 내용처럼 70년대(작중 1970 오사카 엑스포) 어렸을 적의 향수에 젖어 헤어 나오지 못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겹쳐서 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별빛은 그리움으로 단지 쌓여만 가고, 옛사랑이 떠오르면 그저 눈 감을 밖에.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영향일까,  또 다른 타이틀 스물하나 열다섯은 제목에서부터 이 숫자 둘이 나이를 가리킴을 짐작할 수 있다. '시간을 되올 수 있다면' 하고 입을 떼면 김광석이 부른 노래 혼자 남은 밤이 생각나기도 하고, 앞으로 점점 더 과거를 되짚어보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인상적인 과거 조각들의 단편을 반추하는 모양새는 좋은 추억뿐만이 아니라 지금의 후회 또한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전부 잊혀가게 하겠지' 하고 말하듯, 깊은 과거들을 덤덤히 이야기함으로써 무뎌지길 바라는 지도 모른다.
포크의 형태를 띄고 아름다운 노랫말로 슬쩍 감추고는 있지만, 모든 곡들은 저마다 어두운 끝맺음들을 넌지시 이야기한다. 심해에서 '내 맘속에 가다듬지 못한 모서리는 나를 향해 있어' 하고 고백한 것처럼, 온전히 끝내지 못한 여러 일들이 그녀를 괴롭힌다. 아픔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는 과거와 깊이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 제대로 응시할수록 나를 아프게 했던 모서리는 점점 둥글어져 간다. '까맣게 밤하늘을 그려야만 별이 빛나는 걸 알 수 있'다.
'후회'를 그만두고 나를 '이해해 주'면 지난날들이 '꿈결처럼' 느껴지고 '추억'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추억은 한 편의 산문집 되어는 과거를 견딘 것만으로도 대단하고, 잃어버린 것도 없이 뭔갈 찾아 헤매는 청춘 그 자체가 의미를 가진다고 말한다. 과거의 선택들을 추억할 때, 그 시간은 우리에게 와서 한 편의 산문집이 되어 준다고 말한다. 지나간 시간에 박제되지 말자고 응원함과 동시에 자신을 향한 다짐을 굳게 하며 앨범을 닫는다.

열심히 타올랐던 자신의 모습을 은은하게 그려낸다. 고르고 고른 가사들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악곡, 그리고 노래하는 목소리까지 모두 자신의 손끝에서 멋지게 탄생했다. 올해도 벌써 가을에 접어들고 있다. 새 계절의 입구에서 지난 기억들을 떠올려 본다.

 

★★★★☆

추천 트랙: 스물하나 열다섯, 구름 타고 멀리 날아, 밤의 창가에서, 뭇별, 추억은 한 편의 산문집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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