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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ule [softscars]

음악이 실험적이라 함은, 대개 사운드의 질감을 두고 칭하는 경우가 많다. 사운드의 텍스쳐는 음악의 첫 인상과도 같다. 어떤 사람들은 보컬이 늦게 등장하는 곡을 들을 때, 전주 부분을 듣는 동안 "노래 언제 시작해?"라며 물어보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중 음악을 들을 때 보컬의 음색과 표현력, 가사의 형태과 내용 등을 기대하는 것 같다.

영화를 볼 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장센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줄거리만 읽는다. 그게 가장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한편 영화 애호가들은 미장센의 패턴을 분석하기도 하고, 이야기와 캐릭터에 무엇이 투영되어 있는가를 사색하기도 하며, 감독의 의도가 잘 구현되어 있는지, 또는 감독의 의도와 관계 없이 영화가 새로운 의미를 가져다 주는지 등을 찾아보기도 한다. (물론 영화를 꼭 이렇게까지 읽어가며 볼 필요는 없다. 단지 이들은 영화를 좋아하기에 보다 다각도에서 바라보고 더 많은 것을 독해하고 싶어할 뿐이다.) 이러한 연유로, 흔히 '평론가 픽 영화'와 '대중 픽 영화'가 생긴다.

다시 음악 이야기로 돌아가자. 사운드 텍스처가 실험적인 노래의 예를 들고 싶은데, 한국의 힙합 듀오 XXX의 노래가 좋아 보인다. 이들의 데뷔 EP 첫 트랙 Liquor를 플레이하면 가장 먼저 둔탁한 드럼과 사이렌 처럼 울리는 신스, 그리고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김심야의 랩이 등장하는데, 이 또한 선명한 하이톤이다. 이 곡이 실험적인 이유는 이러한 사운드적 측면들도 있지만, 이들이 다루는 주제가 분명하면서도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그 표현이 극단적이라는 점도 있다. 그러나 대개 이런 내용을 다 알기 전에(노래를 전부 듣기 전에, 아니 어쩌면 듣자마자) 이 음악이 충분히 다른 것들과 다르다는, 실험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운드의 질감이 낯설게 느껴진다는 것은, 그 사운드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 사운드가 자연에서 듣기 어려우면 예상하기 어렵다. 자연을 모방하지 않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소리는 예상하기 어렵다. 이러한 소리들은 주로 신디사이저와 샘플링 등의 기법을 통해 탄생한다. 전자 음악과 힙합에서 어제오늘 할 것 없이 새로운 사운드가 등장하는 것도 신디사이저와 샘플링이 이들의 문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비록 지금은 혁명적인 무브먼트를 보여주고 있진 않지만, 록 또한 전자 음악만큼 다양한 사운드 실험의 장이었다. 이들은 때때로 하드웨어 이펙터를 사용해 기타와 보컬의 소리를 변형시켰다.

 

yeule의 3번째 정규 앨범 softscars는 앞선 두 앨범 Serotonin II와 Glitch Princess에서의 미래지향적 팝 음악 실험의 진보이자, 일렉트로닉 팝 음악의 새로운 완성형인 것처럼 들린다. Poison Arrow나 Pixel Affection 등의 앰비언트 사운드로 대표되는 Serotonin II, 앨범 이름처럼 글리치 사운드가 눈에 띄었던 Glitch Princess는 각 앨범의 테마가 보다 확실했다. 1집은 하나의 팝 앨범으로도 완성도 있었지만, 2집은 그보다 실험적인 측면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작은 1집에 더 가깝다. 인디 락 사운드의 등장이 가장 돋보이지만, 앨범 전체적으로는 드림 팝과 노이즈 사운드가 깔려 있다. 그러면서도 단순한 음악 실험으로 끝나지 않고, 훌륭한 팝 앨범으로 마감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로 집단적인 정신적 고통은 음악 시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슈게이즈 리바이벌을 이끈 파란노을의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이나 슈게이즈 색채를 더한 Alvvays의 Blue Rev 등은 현재 인디 음악 씬을 이끄는 하나의 무브먼트다. 코로나 이전 시기로 눈을 돌리면 FKA twigs의 Magdalena나 Candy Claws의 Ceres & Calypso in the Deep Time 같은 명반들도 있다. 이들도 대부분 락 사운드와 결합했지만, 주로 노이즈와 아름다운 선율을 대비시키기 위해 슈게이즈를 사용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softscars는 보다 적극적으로 락 사운드를 차용한다.

 

예를 들면, 앨범의 오프너 x w x나 이 곡의 연장선으로 생각되는 선공개 트랙 dazies에서는 스크리모를 연상시키는 가사와 감수성, 그리고 스크리밍이 핵심이다. 스크리밍은 또한 단순한 절규로 끝나지 않고 노이즈와 글리치로 후가공된다. 이 두 트랙의 다음에는 sulky babyfish in the pool이 위치하는데, 앞선 트랙의 노이지한 절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강조해준다. 4ui12에서 Creep의 가사들 'You're so fucking special''I wish I was special'을 구조적으로 동일한 위치에 놓아둔 것처럼, 이 앨범에는 Paranoid Android와 No Surprises가, Nude와 Reckoner가, Burn the Witch와 Daydreaming이 함께 존재한다. SoftscarsGhosts, Cyber MeatAphex Twin Flame 등등. 프로듀서 Kin Leonn과 함께 작업하고 Mura Masa, Kavari, Chris Greatti가 참여한 이 작업물들은 Radiohead와 Nirvana의 얼터너티브함과 Pixies의 인디 스타일을 미래적인 감각으로 마무리짓는다. 트랙 간 플로우의 변화를 굉장히 매끄럽게 연결하는 부분도 너무나 놀랍다.

 

사운드적인 측면만큼이나 가사의 내용과 형식도 언급을 안 하고 넘어갈 수 없다. 각 트랙은 피부에 남아 있는 상처의 흔적들처럼 과거에 겪었던 여러 아픔들을 이야기한다. 인터넷과 관련된(바이너리 세상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점도 특징인데, 4ui12(i124q: I want to fxxk you)나 software update 같은 트랙을 예로 들 수 있겠다. 형식적으로는 x w x의 가사들(예를 들면 'soft scars on my skin / silicone, porcelain')이나 bloodbunny의 가사들('I love you 4evr ~ so much hate, 888')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긴 라이밍도 꽤 멋지다.

 

softscars는 상처의 흔적들을 아교로 삼아 일렉트로니카와 락 사운드를 팝의 형태로 훌륭하게 결합해낸다. yeule의 실험은 이제 끝났다. 마침내 팝의 새로운 봉우리에 도달했다. 올해의 앨범, 의심할 여지가 없다.

 

★★★★★
추천 트랙: 전곡
* 전곡을 순서대로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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