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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민혁 [해방]

한국 대중음악 시장은 스카이민혁을 기억할 것이다. 몇몇 사람들에게는 그가 Mnet의 힙합 경연 프로그램 시리즈 쇼미더머니중에서도 가장 흥행했던 시즌들 중 하나인 쇼미더머니 9’에서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는 사실로 기억되고 있겠으나, 불행히도 나를 포함한 다수의 청자는 이 시즌의 대표곡 Freak에서 보여줬던 수준 낮은 퍼포먼스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국내 힙합 씬에 관심이 많다면 새들의왕이나 노력의 천재 2처럼 나름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우리는 무관심이 제일 무섭다고들 한다. 스카이민혁 역시 같은 이야기를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계속되는 무관심보다 한 번의 부정적 평가가 우리를 더욱 빠르게 사지로 내몬다. Freak에서 스카이민혁 제거 버전이라는 대중의 평가를 받은 그는, 이후 다시는 대중의 관심을 얻지 못했다. 단지 몇 사람만이 남아서 그래도 언젠가 한 번 보여주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정규 2집 해방은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인 것일까. 그를 둘러싼 시선으로부터의 해방을 제창하는 것일까,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해방을 다짐하는 것일까, 이것도 아니라면 다른 것으로부터 해방을 명령하는 것일까. 앨범 커버를 보면 그가 야반도주하고 있는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그렇지만 그가 말하는 해방은 도망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물웅덩이를 강하게 구르는 발이 Parental Advisory 로고 그리고 강렬한 비트와 합쳐져 분명하게 달리고 있는 이미지를 연출한다. 훌륭하게 정제된 보컬 톤은 우리가 알고 있던 스카이민혁의 이미지로부터 확실하게 해방된다. 인트로 14-23에서 그는 친구들 셋이서 방 하나 구해로 대표되는 그의 이미지로부터 완전히, 완전히 벗어난다.

 

식사 (FEAT. 필리)너 갱갱소리하면 난 90 style라는 가사처럼 꽤나 고전적인 스타일의 파티 힙합을 리뉴얼한다. 라임 역시 투박한 편인데, 특히 훅의 길 비켜 – gg – wack mc killer – still I got flaver – 랩 질려 내 위력 팝 필터 – bar를 찢어가 그렇다. 문장의 끝마다 놓이는 3음절 라이밍이나 wack mc같은 표현은 확실히 오렌지족에서 비롯된 그것이다. 그러나 군데군데(악기나 프로듀싱, 그건 내 맘이다 전후 등에서의 플로우)에서 단순한 레트로이거나 올드한 힙합 트랙은 아님을 어필하고 있다.

악동 권기백이 피쳐링을 맡은 아버지 (FEAT. 권기백)도 인상적이다. 이 트랙의 지향점과는 사뭇 다르지만, 이 트랙을 XXX181517과 비교하고 싶다. 두 곡에서 그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제법 유사하다. 벤틀리로 대표되는 181517에서의 아버지와, 벤츠로 묘사되는 본 트랙에서의 아버지는 두 아들들에게 남성적인 열등감을 제공한다. ‘나의 영원한 영웅에게 벤틀리를 선물하겠다는 김심야의 흐릿한 야망은 본인의 뚜렷한 신념에 의해 꺾이며 알을 파괴하고 나오게 되는데(아버지 / 벤틀리는 죄송하지만 없던 걸로), 본 트랙에서의 스카이민혁 또한 자신의 야망 아버지에게 좆되는 피를 물려받았다고 반복하면서 자신이 놓인 현실적인 상황으로부터 탈피하고자 끊임없이 자기 암시한다. 그러나 이 곡은 이렇게 단순히 허무한 반복으로 끝을 맺지 않는다. 마지막 걱정 마 아들은 역전 / 아버지 못 이룬 꿈 내가 다 이뤄 2마디로 그는 아버지의 울타리를 탈피한다.

사운드 뿐만 아니라 래핑에서도 큰 쾌감을 주는 트랙 파이트 (FEAT. KOR KASH)는 변화한 스카이민혁의 면모를 속속들이 보여준다. 하이톤의 플루트가 다이나믹하게 스타트를 끊는 비트 위로 한껏 톤을 올린 그의 랩이 등장한다. ‘CHURCH - 번식 연식 점심 등의 동일한 라이밍으로 플로우를 만들어주다가, ‘점심을 길게 늘어뜨린 이후 내주고 세 주고에서 이러한 반복을 3음절 2마디로 변형하고, 그럼 닥치고 해 놀음 라인에서 전후 라임을 맞추면서 2음절로 내려오며 템포를 올리며 톤을 조금 더 올린다. 이후 ‘why do you wanna fight?’부터 시작하는 16마디를 위해 톤을 한 스텝 낮추며 다시 빌드업을 한다. 앞서 한 차례 기대를 꺾고 진행했기에 ‘yeah 내가 게임 체인저에서 가져다주는 쾌감은 배가 되며, ‘게임 체인저를 요구하는 그의 말에 어느 정도 설득력을 부여한다.

이어지는 트랙 해방은 직선적이면서 야생적이다. 낮은 톤으로 너무 작은 한국 너무 작은 seoul’을 내뱉으며 점점 올라가는데, 비트 역시 셰퍼드 톤을 연상시키면서 상승의 이미지를 그린다. 그가 가진 열등감들(입금된 돈 방금 너무 작아서’, ‘봐야 돼 한남 더 힐에서 멋진 전망을’, ‘답 없어 이 동네 떠야 돼 마을’, ‘곰팡이 쓸린 집에서’, ‘니가 날 무시했던 말’, ‘여러 번 까였지 피처링)은 마지막 8마디 직전에 여자친구한테 또 얻어먹고부터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며 구체화되기 시작하는데, 직후 해방의 날 위해를 반복하며 폭발한다. 끊임없이 상승한 끝에 자신을 내놓아 해방시키고자 하는 그의 제전은 그 자신을 가장 높은 곳으로 올린 뒤 밀어 떨어뜨린다.

진실은 앨범을 마무리하는 두 트랙 중 하나로, 그의 강점인 호소력이 잘 드러난다. 앨범 전반에 걸쳐 수없이 등장한 열등감과 도치법을 하나로 보여주는 첫 가사부터, 이전 트랙 해방을 축약하는 세 문장(아 맨날 화가 나는 걸 / 뜨고 싶은데 맘대로 안 된걸 / 여친만 탓하고), 해방하고 싶었었지만 / 날 가둬둔 사람은 나였잖아에서 드러내는 앨범의 정체성까지가 모두 들어있다. 생각을 뭉쳐놓은 낱말 모음들과 보컬 연기가 곧 강한 호소력이 된다.

 

스카이민혁, yogic beats, 조호신, BMTJ, Scorpio Prodz 등이 참여한 프로듀싱이 인상적이며, 특히 전반부(14-23부터 아버지까지)와 후반부(파이트부터 진실까지) 트랙들이 모두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올해 발매된 한국 힙합 앨범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앨범들 중 하나이며, 동시에 가장 반전된 모습을 보여준 앨범임에 틀림 없다. 앞으로, 적어도 당분간 스카이민혁은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호출될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 시장은 스카이민혁을 기억할 것이다.

 

 

★★★★

추천 트랙: 14-23, 식사 (FEAT. 필리), OUTCOME (FEAT. Khundi Panda), 아버지 (FEAT. 권기백), 파이트 (FEAT. KOR KASH), 해방,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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