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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 [Howl]

솔로로 돌아온 츄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기억하는 츄는 언제나 밝게 웃고, Heart Attack의 커버 아트처럼 빨갛게 빛나는 아이돌일 것이다. 물론 모종의 사건 이후로 사람들은 츄에게서 아이돌 바깥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하고, 츄 역시 이러한 모습을 벗어나 다양한 모습으로 만나고자 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츄는 여전히 아이코닉하며, 츄라는 이름은 아직까지 이달의 소녀에 묶여 있다. 일단 Heart Attack 이후로 자신을 대표할 만한 노래가 없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동안 꿈의엔진이라는 회사를 통해 예전 곡들을 리메이크해 부르기도 했었지만, OST와 리메이크 곡들이 자신을 대표할 수는 없다. 유행을 좇는 프로듀싱은 츄에게도 잘 맞지 않는 옷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EP는 사실상 제2의 데뷔다. 첫인상은 확실히 이전과 달라진 것 같다. 콘트라스트 강한 빨간색은 연한 복숭앗빛으로 물들었다. 연해진 화장과는 반대로 츄의 눈동자는 더욱 또렷하다. 이제야 제대로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

 

타이틀곡 Howl은 신디사이저 중심의 일렉트로닉 팝이다. 넓은 공간감을 주는 웅장한 톤의 일렉트릭 기타 이후, 의미를 해석하기 어려운 보코더 사운드가 등장한다. Daft Punk를 떠올리게 하는 보코더 소리는 마치 가면을 쓰고 있는 듯하다. 이 정체가 누구일까 하고 고민하고 있으면, 츄의 보컬과 함께 같은 가사가 보코더 소리로 깔려 레이어를 형성한다. 보코더의 정체가 츄라면 왜 이런 형식을 사용했을까? “그럴 땐 웃음이란 망토를 쓰곤 해”라는 가사를 통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부정적인 진행은 계속되다가 하지만 누군간 꼭 알아줬음 해끝 무렵에 급격하게 키를 올리고, 이후 “Oh you know oh you know oh you know” 파트를 통해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공간감 있는 신스와 둥---둥둥 패턴의 작은 드럼이 츄의 보컬을 돋보이게 해 준다. You know는 주로 말을 이어줄 때 사용해서 너도 아는 것처럼과 같은 뉘앙스로 사용되는데, 다음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면서 동시에 다음 진행을 궁금하게 해 준다. 해가 저물면 get home”2번 반복되는데, 반복적인 일상의 표현이기도 하고, 앞서 “oh you know”를 반복했던 것의 연장선상에서 다음 이야기를 계속 궁금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면 츄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정확히는 프로듀서와 작사가(서지음)는 츄에게서 무슨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을까, 답은 이어져 나오는 세상은커녕 그 무엇도 / 구할 수 없던 우린 이제 서로를 구해볼까 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블록베리 크리에이티브로부터 나와 ATRP, 주식회사 츄로 적을 옮기게 된 과정에서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한다. 코러스의 가사 전체는 힘든 과정을 겪은 츄 본인과 츄를 지지해 준 많은 사람들, 그리고 팬들로부터 받은 위로를 이야기한다. 다시 돌아와서, 프리 코러스 역할을 겸하는 “Oh you know”에서 oh와 you를 잇는 지점에 하나의 이어진 악센트가 생겨 도입을 강조하는 반면, “Woo woolf”에서는 악센트가 뒤쪽에 생기고 그것도 입술에 이를 대고 만드는 소리라 가벼운 상승을 강조한다. Woolfl은 사실상 발음되지 않아 개나 늑대의 짖는 소리인 woof처럼 들리는데, 제목이 Howl이라는 점과 크게 소리쳐라는 가사를 고려하면 타당해보인다. 이 소리를 ‘mayday’라고 말하고 있는데, 나는 여기 있어에서의 주어는 화자인 츄일 것이고, 너는 거기 있어의 주어는 청자가 될 것이다. 전자는 자신이 받은 고통을, 후자는 팬들을 향한 구원자적인 응원을 그린다. “Woo woolf”에서 자리를 잠시 비웠던 신스와 드럼이 보컬과 함께 들어오면서 코러스를 꾸며준다. 곡 구조는 A-B-A-B-C로 끝내는 요즘 스타일인데, 짧은 곡 유행을 따라가려고 한 것으로 생각된다.

츄의 보컬 테크닉이 가장 돋보이는 곡은 Underwater. 기타 하나와 “Woo Woo Woo”로 시작하는 츄, 직후 이 낯선 푸른 빛”으로 시작하는 가사와 앨범의 커버 아트는 서로 조화되어 도입부에서 매력적인 랜드스케이프를 형성한다. 두 번째 벌스인 “Dive 날 끌어 당기지”부터는 수동적인 모습으로 화자를 그리고 있는데, 낮고 넓게 깔리는 신스와 츄의 백보컬이 들어오면서 기분 좋게 깊이 빠져 들어가는 모습을 그린다. 프리 코러스 도입부 아무도 알 수가 없는 이곳부터는 가성을 이용하여 키를 높이면서 끝 단어들을 길게 늘이며 템포를 낮추는데, 직후  Underwater에서 빠른 템포로 들어와 주는 모양은 마치 더운 날 시원한 물속으로 다이빙하는 듯한 기분을 준다. 악기가 풍성하게 받쳐주고 있는 타이틀 곡과 다르게 단출한 구성으로 힘을 뺀다. 이 곡의 구조는 A-B-A-B-C-B로 일반적인 팝의 형태지만, 전반부에는 코러스를 넣지 않고 “Underwater”를 짧게 삽입해 조금 변형한 형태다.

My Palace에서는 색다른 톤을 보여준다. 인트로의 괴이해지는 건반 사운드가 신스에 의해 뚝 끊기면서 해맑은 목소리의 츄가 안녕 낯선 이야하면서 등장하는데, 도입부 5초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판타지적 무드를 만들어낸다. 요즘 스타일 질감의 강한 드럼은 또 츄의 어디로 튈지 모르겠는 보컬 라인과 어울려 불안함을 형성한다. 이 불안함은 변조된 목소리로 아늑한 나만의 궁전이야하며 궁전 소개를 마무리할 때 현실이 되는데, 코러스를 맞이하는 건 전보다 강해진 우울한, 가깝게는 Red VelvetPsycho를 연상시키는, 멜로디 라인과 악기들이다. 표면적인 가사는 우울함과 거리가 있는데 왜 이런 분위기를 연출할까? ‘궁전의 소개는 꽤나 자세하고, 화자는 의욕에 가득 찬 듯한 모습이다. 여기 신기하지 ~ 나랑 닮았지 8마디 전체에서 사랑에 대한 갈구와 결핍이 느껴지는데, 너를 위해 Open / 나와 함께 있어나의 마음속에 / 함께 있을 사람이라는 문장에서 멘헤라나 얀데레적인 이미지가 그려진다. 특히 핑크빛 벽돌이나 곰돌이 아저씨로 대표할 수 있는 귀여운 이미지들은 현실 세계에서도 산리오의 ‘쿠로미’ 같은 캐릭터를 떠올리게 한다. 솔로 보컬이지만 신스와 보컬의 잔향을 사용해서 곡을 풍성하게 채워준다. 말하는 듯한 보컬은 가사에 집중하게 만들고, 가사는 스몰 월드 판타지를 충실하게 구현한다. 츄의 보컬 연기와 곡의 키 체인지도 매력적이다.

Aliens는 어두운 톤의 보컬과 대조되는 신나는 신스 팝 트랙이다. 먹먹하게 시작해서 점점 선명해지는 츄의 목소리는 신디사이저 같은 느낌을 주는데, 13번째 타이밍에 완전히 선명해지면서 바로 치고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는 일종의 속도감을 주는데, 장르적인 문법 측면에서, 특히 The Weeknd의 히트곡 Blinding Lights를 연상한다는 점에서 곡에 질주감을 부여하는데, 후에 나오는 어디를 헤매는 건지떠돌다가 와서의 이미지를 강화해 준다. 가볍게 들을 수 있는 곡이지만,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있다. 일단 가사에서는 계속 달라서 좋다고 이야기 하지만, 피상적으로 겉돈다. 왜 다른데 좋지? 물론 좋아하는 데 이유는 없지만, 변명은 해 줬으면 한다. 사랑의 변명을 듣는 건 분명  사랑 이야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순간 중 하나니까. 단어 사용을 하나 짚자면, 쨌든 둘 다 같은에서 쨌든의 사용은 시대를 타서 조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시대를 탄다는 말은 청자층을 한정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래도 이 정도는 나름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편이라 넘어갈 수 있어 보인다.

마지막 트랙 Hitchhiker는 앞선 곡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가사 양이 적은 건 아닌데, 대부분 단어들끼리 붙어 있고 어떤 부분은 퐁당퐁당 떨어져 있어서 빈 공간이 많다는 느낌이 든다. 이 공간을 특별히 악기들로 꾸미고 있지도 않고, 대개 드럼이 홀로 멋쩍게 서 있는 것처럼 나온다. 힘을 뺀 듯한 방식이지만, EP를 마무리하는데 나쁘지 않아 보인다.

 

보석처럼 깨끗한 목소리와 사운드는 앞으로 츄를 이번 EP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게 만든다. 깨끗한 소리와 저마다 다른 트랙의 매력은 바닷가에서 예쁜 조약돌을 한 움큼 집어 유리병 안에 담아둔 것만 같다. 유기성을 신경 쓴 프로듀싱은 개별 트랙보다 하나의 모음집으로서의 모습을 강조하고, 일관성 있는 사운드 아래에 츄의 목소리는 더욱더 선명히 들린다. 마치 또렷한 눈동자처럼 말이다.

 

★★★ (괜찮아요)

추천 트랙: Howl, Underwater, My Pa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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