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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spa [Savage]

본작은 aespa의 첫 번째 EP다.

aespa는 개성 넘치는 세계관과 특유의 음악, 무엇보다 윈터와 카리나가 있는 4인조 걸그룹이다.

본 EP가 발매되기 전, 2021년 5월 발매된 싱글 Next Level이 굉장한 호평과 인기를 불러일으키며 순식간에 대세 걸그룹 반열에 올랐다.
Next Level에서는 데뷔 싱글 Black Mamba에서 보여주었던 세계관과 사운드 모두 한층 강화하며 컨셉트를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특히 종잡을 수 없이 질주하는 곡의 진행이 일품이다.
거기에 영화 '분노의 질주' OST를 리메이크하여 대중성을 확보했으며, ‘디귿춤’이 대중적인 유행을 만들기도 했다. 완성도 높은 뮤직비디오와 더불어 ‘[공유] aespa – Next Level 선생님 안무 컨펌 영상 공유의 건’이라는 재치있는 제목의 안무 영상을 업로드하여 친근함을 한층 더했다.

얼마 지나지 않은 동년 10월, 본작 Savage가 발매됐다.
대중의 큰 기대가 부담이 됐을 법도 한데, 이 EP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본작의 믹싱과 마스터링은 컨셉트에 맞게 잘 설계됐다.
모든 사운드 소스가 잘 구분되고, 굉장히 입체적이다.
보컬이 앞에 놓이며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부각된다.
악기들은 때때로 부딪힌다는 느낌을 받으나, 본작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마스터링 같은 경우에는 해외 유명 스튜디오에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국내 스튜디오에서 작업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이러한 엔지니어링이 단순히 곡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aespa의 개성 강한 세계관을 한 층 더 설득력있게 만들어준다.

보컬 실력 또한 흠잡을 데가 없다.
흔히 ‘유영진 스타일’이라 부르는 창법도 효과적이다.
이는 타이틀곡인 Savage를 지나며 I’ll Make You Cry에서 극대화된다.
윈터, 카리나의 파워풀한 보컬과 노래에 알록달록한 색을 입혀주는 닝닝의 보컬은 본작에 이르러서 물이 오른다. 지젤의 랩과 보컬도 이들을 뒷받침하는 힘이 충분하다.

본작은 aespa의 첫 앨범(EP) 단위의 릴리즈다.
따라서 그동안 여러 잡음을 일으켰던 개성 강한 세계관에 대해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개성 강한 세계관은 양날의 검과 같아, 설득에 실패하면 그룹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관 속 aespa 멤버들은 ae-aespa와 SYNK DIVE하여 KWANGYA에서 Black Mamba와 싸운다.
Black Mamba가 무찔러야 하는 부정의 존재라면, naevis는 aespa를 돕는 긍정의 존재다.
이러한 세계관은 본작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다.
사운드는 과할 정도로 강렬하고 다이나믹하며, 가사 또한 그렇다. naevis가 등장할 때는 곡의 흐름이 크게 바뀐다.

인트로인 aenergy는 ae-aespa에 대해서 설명하여 리스너의 이해를 돕는다.
Savage에서는 naevis와 함께 Black Mamba와 맞서 싸운다. 특히 인트로에서 윈터의 ‘Oh my gosh! Don’t you know I’m a savage?’라는 가사는 본작 전체를 단 한 줄로 설명한다. 프리 코러스의 ‘I’m a savage 널 부셔 깨 줄게’라는 가사에 이르러서는, 앞서 예고한 것처럼 단순한 걸크러시에서 그치지 않고 폭력의 발현으로까지 나아간다. 곡이 끝나갈 무렵 naevis의 등장과 함께 비트는 종잡을 수 없어지며, 닝닝과 카리나의 고음 이후 급하게 마무리된다.
I’ll Make You Cry의 가사는 Savage의 MV 마지막 장면과도 이어지면서 다음 스토리를 궁금하게 한다.
Savage와 I’ll Make You Cry에서는 트랩과 하이퍼팝을 장르로써 받아들여 이러한 스토리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YEPPI YEPPI부터는 이러한 스토리에서 조금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운드적으로는 기타, 신스, 드럼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며 앞 트랙들에서 과열된 분위기를 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운시킨다. 제목이 그러하듯, 가사 역시 귀엽고 자신감이 넘친다.
이런 성향은 ICONIC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며, 아웃트로인 자각몽 (Lucid Dream)에 다다르면 느려진 박자와 낮은 톤의 목소리를 사용하여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놀랍도록 차분해진다. 앞선 트랙들이 꿈이었던 것처럼, 마치 메타버스 세계에서 갓 나온 것처럼 몽환적인 기분에 둘러싸인다.

SM은 가장 대중적인 K-Pop 아이돌을 만드는 집단이면서 동시에 근 10년간 한국에서 가장 전위적인 음악을 만드는 집단 중 하나다.
SM의 독자적인 송 캠프 시스템은 다양한 장르의 혼합, 좋은 퀄리티의 음악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 실험성을 부여해왔다.

본작은 맥시멀리즘으로도 정의되는 K-Pop 시장에서 기어코 맥시멈의 선을 넘어간다.
발현된 폭력성이 본작 전반에 걸쳐 넘쳐 흐른다.
앨범 커버부터 보컬 디렉팅 같은 부분들마저 불친절하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과함이 역설적으로 다가가기 어려운 세계관에 설득력을 부여하며 aespa라는 그룹에 영혼을 불어 넣는다. 아이러니하지만 ‘ICONIC’하다.

 


추천 트랙: aenergy, Savage, I’ll Make You Cry, YEPPI YEPPI, ICONIC, 자각몽 (Lucid Dream)
* 전곡을 순서대로 듣는 걸 추천합니다.

 
 
부록 - 하이퍼팝
 
원래는 올해 3월에 발매된 Alice Longyu Gao의 [Let’s Hope Heteros Fail, Learn, and Retire]라는 앨범 리뷰를 작성하면서 다룰 예정이었다.
그러나 해당 앨범을 리뷰하기에 실력이 부족할 것으로 사료되어 여기에 부록으로 남긴다.
위에서부터 이해하기 쉬운 순서로 나열했다.
 
[노래] 100 gecs – Hollywood Baby, https://www.youtube.com/watch?v=UtfkrGRK8wA
[동영상] 우키팝, "쓰레기다 VS 극락이다 | Hyperpop(하이퍼팝) 이야기", https://www.youtube.com/watch?v=U9pEtV6ex3A
[글] 디시인사이드 전자 음악 갤러리, "하이퍼팝이란 무엇인가",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elecmusic&no=18273
[글] weiv 전대한, "[칼럼] ‘과잉의 감각을 재현하는’ 음악으로서의 하이퍼팝", https://www.weiv.co.kr/archives/24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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