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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 음반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몇 번 있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IZM 한성현 리뷰어와 메일을 주고 받으면서(감사합니다) 앨범 리뷰에 대한 생각을 들어볼 수 있었고, 얼마 전에는 앨범 리뷰가 필요한지에 대한 글을 읽기도 했고, 그보다 조금 더 전에는 앨범의 유기성에 대해서 커뮤니티에서 도는 이야기를 보기도 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한 제 생각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 주제와 관련되어 보이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먼저 몇 개 늘어놓으려 합니다. 복잡한 문제는 Divide and Conquor 방식으로 접근하면 실마리가 보입니다.

 

그것보다도 앞서서 3가지 이야기를 먼저 하겠습니다. 먼저 LP(Long Play)와 EP(Extended Play)입니다. LP가 흔히 말하는 앨범이 될 것이고, EP는 그보다는 조금 작은 규모의 앨범 형식이 되겠습니다. LP는 주로 30분 이상 정도의 플레이 타임을 가지고, EP는 주로 4~6개 정도의 트랙을 가져서 10~20분 정도의 플레이 타임을 가지는 편입니다. 다음은 Studio Album, Compilation Album, 그리고 Soundtrack입니다. 스튜디오 앨범이 흔히 말하는 앨범입니다. 컴필레이션 앨범은 특정 주제에 맞춰 이미 만들어진 곡들을 발매하는 형태로, Greatest Hits나 바흐 연주곡 모음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플레이리스트입니다. 플레이리스트는 컴필레이션 앨범과 비슷한 형태이나, 트랙 수에 제한이 없고 유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분명 음반은 곡들의 모음입니다. 그렇다면 음반은 그저 곡들의 모음일 뿐일까요, 아니라면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요? 엘비스 프레슬리의 데뷔 앨범인 Elvis Presley (1956)는 당대 히트곡들의 모음에 가깝고, 분명 좋은 곡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앨범의 평가가 좋은 편은 아닙니다. 앨범의 주제를 특별히 찾을 수 없어서 중구난방하다, 유기성이 적다는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반면, 퀸의 컴필레이션 앨범 Greatest Hits (1981)은 분명 히트곡 모음임에도 불구하고, 어찌보면 그들의 앨범 중에서 가장 높게 평가받는 앨범입니다. 퀸 역시 비슷한 이유로 앨범들이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지만, 그 앨범들의 히트곡들을 모았더니 단점은 깔끔히 사라진 형태가 된 것이죠. 뉴진스의 데뷔 EP인 New Jeans (2022)는 어떨까요. 이 짧은 EP의 수록곡 4곡이 단일한 무드를 띄지는 않습니다. Cookie 다음에는 Hurt가 이어지는데, 두 곡은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물론 Cookie가 끝나는 지점과 Hurt의 시작 지점에서 아무런 연결성이 없냐면 또 그건 아니지만, 전반적인 EP의 4곡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승전결을 가져갑니다. 이 EP를 하나로 느껴지게 하는 지점이 있다면, 뉴진스라는 새로운 컨셉트의 가수를 소개하는 데뷔 앨범이라는 점일 겁니다. 뉴진스라는 컨셉트, 신선한 마케팅, 찰랑거리는 검은 생머리의 MV, 파란색 토끼 앨범 커버, 곡의 악기처럼 사용되는 보컬 트랙, 그리고 좋은 곡들. 저는 같은 이유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데뷔 셀프 타이틀 앨범 역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셀프 타이틀 앨범은 그 가수가 누구인지 소개하는 앨범일 텐데, 제게 Elvis Presley는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어 보이거든요.

 

다시, 음반은 곡들의 모음입니다. 그렇다면 각 트랙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앞서 잠깐 이야기한 것처럼, 일반적으로 하나의 트랙은 그 자체로 기승전결을 가집니다. 특히 대중음악의 곡 구조(벌스-코러스-벌스-코러스-브릿지-코러스)를 띄면서 말이죠. 소니 롤린스의 Saxophone Colossus (1957)는 재즈 연주 앨범이지만, 각 곡은 저마다의 기승전결을 가집니다. 물론 모든 곡이 앞서 말한 구조를 따른다고 보긴 어렵지만, 각 곡의 구분은 명확합니다. 반면, 또 다른 재즈 연주의 거장 파로아 샌더스의 Karma (1969)는 단 2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곡 The Creator Has  A Master Plan은 33분에 육박하는 대곡이고 두 번째 곡 Colors는 상대적으로 짧은 5분 37초입니다. 33분에 달하는 곡이고 여러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여러 트랙으로 나눌 순 없었을까요? 클래식 연주 음반들에서는 하나의 곡이어도 개별 트랙으로 쪼개기도 하는데 말이죠. 아니면 어떤 앨범들은 일부 트랙의 시작과 끝을 연결짓기도 하고, 애초에 앨범 자체를 하나의 트랙처럼 만들기도 하는데요. 사운드트랙 앨범은 어떨까요? 루드비히 고란손의 영화 오펜하이머 OST (2023)의 각 트랙을 들으면 영화의 특정 시퀀스들이 기억나곤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운드트랙 앨범의 트랙들은 영화의 순서를 따르게 되고, 그런 부분에서 하나의 큰 물줄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뭐라고 명확한 답을 내놓기는 어렵지만, 각 트랙은 아티스트의 의도에 의해 구분되니, 개별 트랙은 저마다 역할을 맡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근데, 요새 누가 음반 통째로 듣나요. 심지어 예전에 CD플레이어나 카세트 플레이어가 있었을 때도 트랙을 스킵하면서 듣곤 했습니다. 심지어 지금처럼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중화된 시점에, 자신이 좋아하는 곡만을 모아 플레이리스트 형태로 들을 수 있다면, 음반을 이야기하는 건 시대착오적인 게 아닐까요? 보다 세게 이야기하면, 어쩌면 플레이리스트는 음반보다 우월한 게 아닐까요? 아마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플레이리스트인 Spotify의 TTH(Today's Top hits)는 이름처럼 히트곡 모음집입니다. 히트곡을 모아놓은 음반과 다른 점이 있다면, 플레이리스트의 내용이 자주 바뀐다는 겁니다. 스포티파이는 잘 모르겠으면, 멜론 탑100을 생각하면 됩니다. 내용이 변하지 않는 플레이리스트도 있습니다. Apple Music의 ESSENTIALS Jass Piano는 말 그대로 재즈 피아노 명곡 선입니다. 이렇게 음반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도 동시에 보다 유연성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플레이리스트는 어디까지나 2차 창작의 영역입니다. 싱글이나 앨범이 발매되어야 이야기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그리고 매번 새로운 컨셉트의 싱글을 발매하는 일보다 어쩌면 하나의 방향성을 가진 앨범 아래에 여러 곡을 두는 게 제작과 향후 활동 측면에서도 유리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수는 곡으로 기억될까요 아니면 음반으로 기억될까요? 당연히 곡으로 기억될 겁니다. 왜냐하면 음반으로 기억하는 소수의 사람들 또한 곡으로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1987)는 수록곡들의 영향력보다 단일 음반으로서의 영향력이 더 큰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경우에 대중들은 가수를 히트곡들로 기억할 겁니다.

 

앞선 4가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통해서, 이제 이 글의 제목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일 음반은 아티스트가(혹은 아티스트들이) 하나의 주제 아래에 여러 곡들을 묶어낸다는 점에서 새로운 가치가 생겨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순한 히트곡 모음집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한 음반 속의 모든 트랙들의 힘이 이들을 조직하는 힘보다 크다고 생각합니다. 음반이 단순히 디렉터와 A&R 놀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음반은 지금 시대에도 의미를 가진다고 봅니다. 음반은 단순한 싱글 모음집이 아니고, 순서를 바꿀 수 없는 플레이리스트도 아닙니다. 아티스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하나의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들여 생각해봤지만, 사실 항상 하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평소에 아티스트의 앨범을 기다리면서 하는 생각은 두 가지 거든요. 좋은 곡들이 얼마나 있을까,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가져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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