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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lie [BYOB (bring your own best friend)

 

이 곡은 보컬 트랙이 핵심이다. 훌륭한 편곡, 훌륭한 멜로디 라인, 소소한 가사도 모두 포인트다. 하지만 이 곡은 보컬 트랙이 핵심이다.

이 곡은 굉장히 가볍다. 또, 트렌디하다. 짧은 러닝 타임, 디스코 신스 펑크 등 보여지는 것이 그렇다. 앨범 커버도 그렇다. Frank Ocean의 싱글들 Dear April, Cayendo가 생각난다.

그러나 가볍고 트렌디하다로 요약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노래 외적인 감상이다. 가볍고 트렌디한 트랙은 무수히 많다. 이 트랙은 그것들과 분명 다른 지점이 존재한다.

이러한 인상은 시작 부분의 부드러운 악기들(드럼마저 상냥하게 어울린다)과 이들을 보컬 라인이 그대로 이어 받는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도입부의 장점은 보컬이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뭐 딱히 관심 없어 그 남자앤’의 단조로운 보컬 라인은 말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한국어의 표준어에는 성조가 없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별루’나 ‘말구’는 한 라인의 끝에 위치하는데, 이 지점은 멜로디가 이어질 것을 예측시켜줘야 하는 지점이기도 해서 한 번 길게 올라갔다 내려오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 시점에 지루해하고 썩 내키지 않아하는 단어들이 호응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들어오는 츠키 파트는 특히 핵심적이다. 츠키는 보컬 톤이 높고 비음이 많이 섞인다. ’넌 내 맘 잘 알지’에서 일본인이자 한국어 화자인 츠키의 힘이 잘 드러난다.

일본어에는 ’ㅓ’와 비슷한 모음이 없다. 그래서 ‘ㅗ’로 처리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두 가지 효과를 주는데, 하나는 직관적으로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진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귀엽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ㅗ’ 발음이 입술을 동그랗게 모아서 바람을 내보내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모국어가 아닌 화자가 노력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한국어 화자라면 단어의 첫머리에 의도치 않게 힘을 주게 되는데(독자적인 의미를 가지는 단어 어두에 stress 부여), 이 라인에서 츠키 역시 그렇게 발음한다(‘잘’은 의문문 수식에 사용해서 강세, ‘알지’는 원래 ‘알‘이 저음 강세인데 멜로디 변화로 고음 강세). 그런데 한 글자 단어가 연속해서 4개, 두 글자 단어가 마지막에 1개다. 특히 본격적으로 벌스에 진입해서 멜로디 라인이 기존보다 다이나믹해진 상태인데(6글자의 음에 반복적인 패턴이 없다), 그래서 저 6글자는 마치 밑에서 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것처럼 두근거리게 만든다.

‘딴 얘기하면 안 돼?’와 ‘넌 내 맘 잘 알지’가 가지고 있는 힘은 ’별루‘와 ’말구‘의 투정이 ‘두고 와 boyfriend’와 ‘Stop, 출입금지야’의 강한 거절 명령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스스로 거기에 따르게 만든다.

후반부의 Da-da-da 부분 역시 핵심적인데, 이는 ‘Stop 출입금지야‘와 ’Now it’s only for us’에서의 단호함과의 대비도 있고, ‘BYOB bring your own best friend’에서 modal voice register의 연속적인 하강과의 급격한 대비도 있다.

그래서 이 트랙은 단순히 ‘친구에게 말 거는 듯한 친근함’이 강점이라고 말한다거나, ’이지리스닝하기 좋은 트렌디한 트랙’이라고 정의하면 아쉽다. 가사와 멜로디가 굉장히 훌륭하게 호응하고 있는 트랙으로 기억하고 싶다.

왜 우리는 츠키를 기억해도 빌리를 기억하지 못할까? 빌리가 누구인지 의문이 생기지 않는다. 단순히 맥거핀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끊임없이 궁금해야 하는데, 뭔가 자연스럽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 노래도 그렇다. 부드럽고 단호한 보컬 라인을 듣고 있으면, 어느새 이들의 거절에 순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무언가에 홀려서 앞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 지 기억도 못한 채 그저 따를 뿐이다. 마법에라도 걸린 걸까.

★★★★☆ (취향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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