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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마 [선전기술 X]

 
뉴트로의 연장선상에서 시티 팝과 사이버펑크의 인기를 이야기할 수 있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선망하고, 그 시대가 그렸던 미래의 모습을 통해 지금과는 어딘가 조금 다른 세상을 생각해 본다. 우리를 사이버펑크로 빠져들게 하는 시각적 요소 2가지는 영상 매체와 어두운 도시 풍경이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만들어내고, 동시에 이 '멋진 신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밤하늘 아래 높은 마천루가 펼쳐진 모습을 익스트림 롱 쇼트로 제시한다. 이 좁고 높은 마천루들은 대체로 동북아시아 한자 문화권의 모습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며, 우리가 가진 향락적인 야경도 역설적이지만 안전한 치안으로부터 기원한다. 그래서 어쩌면 사이버펑크는 우리가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장르일지도 모르겠다.
 
백예린이 피쳐링한 오프너 Doctrine은 마치 블레이드 러너(1982)의 초반부 시퀀스를 연상시킨다. 기호2의 마지막 내레이션, D.M.C 도입부의 영어 내레이션 위로 얹은 한국어 통역, skit인 광고에 삽입된 아이들의 합창과 방송국 로고송처럼 들리는 'EMA', K.U.J 마지막에 일본 TV 방송 스폰서 멘트를 삽입해서 한 편의 방송처럼 마무리하는 방식 등도 그렇다. 현실 세계의 모습을 콜라주하여 작금을 디스토피아이자 사이버펑크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곡 중간에 샘플들을 계속 삽입하고 곡의 진행을 급변시키면서 얻는 또 다른 효과가 있는데, 바로 TV 채널을 계속 돌리면서 광고들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최근에 가족들과 TV를 보면서 계속해서 광고만 나온다고 불만을 늘여놓은 적이 있다. 비단 TV 뿐만이 아니다. 인터넷의, SNS의 보급으로 우리는 정보의 바다가 아니라 광고의 바다 속에 놓여 있다고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음반 전반에 걸쳐 있는 급격하고 잦은 트랜지션은 정보를 얻기 위해 수많은 광고를 시청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며, 우리가 얼마나 '선전기술'들 속에 놓여있는 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와 비슷하게 과대광고처럼 다가오는 것들도 있다. Doctrine의 백예린 피쳐링은 사이버펑크적인 앨범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지만, 영어 발음이 거슬린다는 점에서 아쉽기도 하다. '구현된 승전의 전리품은 오늘날에 신화화' 라는 라인도 이와 유사하다. 이 구절에서 말하는 '승전의 전리품'은 앞서 언급한 무형의 약속(선동, 선전)으로 보이는데, 여기에 구현된이라는 쓸데없는 표현이 추가적으로 수식하고 있다. 불필요하고 뜬구름 잡는 수식은 가사의 독해를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메타적으로 해석해서 또 하나의 과대광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내용에 비해 형식이 너무 포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선에서 이러한 표현들을 호평할 수 있다. 한편, 포장된 표현들을 비판할 여지도 있다. '구현된' 이라는 단어를 추가해서 얻는 라임의 방식은 4/4 박자에 맞춘 이미 사라져 버린 붐뱁 시대의 것들(이 앨범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진흙 속에서 피는 꽃' 이나 '불한당가'에 대한 연상 등)이지, 승전의 전리품이라 칭하기 어려워 보인다. 앞서 말한 영어 발음 역시 백예린에게 계속 지적되어 오고 있는 만큼 의도된 것이 아니라 의도에 비해 결과물이 아쉽다고 해석하는 쪽이 더 가까워 보인다.
 
광고에 대한 비판 역시 돋보인다. 선동, 기업, 정치, 종교, 군사 이런 것들이 모두 선전이고 완성되지 못한 이상이라고 말한다. 이데아를 좇는 것, 카피를 지향하려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모두가 타이틀은 원하지만 진정으로 갈구하지는 않는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의도된 시뮬라크르로 전락되어 버린 현 세태는 비단 사회적인 일들, 누군가는 실존의 문제에 뒤쳐지는 나와 관계 없는 일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뿐만 아니라 힙합 씬에서도 벌어지는 사태라고 이야기한다. 3H 정책에서는 '소득세 안 뗀 계좌, 대부분 차는 렌탈, 근데 또 폼은 나 젠장 진짜, 힙합의 진가는 결국 빛깔' 이라며 자조한다. 이 가사는 물질적인 멋 역시 멋이 맞다고 인정한다는 점에서 훌륭하지만, 결국 이런 식의 앨범들이 으레 그렇듯 개인의 넋두리로 끝난다는 점에서 아쉽다. 그래서 오도마는 자기 비판(한국 힙합시장에 대한 비판)에 대한 반복과 일종의 맑시즘적인 혁명(혁명은 스트리밍 밖에 있습니다)을 통해서 돌파하고자 했지만, 이 과정에서 브랜딩에 실패했고 유의미한 결과를 내진 못했다. 이 컨셔스 힙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전기술 X'가 선전기술로 아이코닉한 브랜드가 되어야 했고, Kendrick Lamar의 'we gon' be alright!'나 김심야의 '지금 가장 뜨거운 건 랩이 아니라 SHOW ME THE MONEY'처럼 널리 퍼져야 했다.
 
또 다른 힙합 씬의 이야기들도 찾아볼 수 있다. 3H 정책에서는 '시발점은 래퍼들의 이빨' 이라는 첫 소절과 이희문의 투전풀이는 불한당가의 메타 첫 소절('첫 번째는 AT431')과 판소리 적벽가 샘플링을 연상시키는데, 피쳐링과 'I am here for entertain'이라는 가사를 통해 힙합 씬이 노름판으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한다. D.M.C에서는 '내가 수년 간 쫓은 가치를 도려내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Rakim the God MC'라며 래퍼는 랩으로 증명해야 하는가, 랩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같은 오래된 문제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선전기술에서는 '힙합을 오역 중인 다음 세대에게 던질 해체 이론이 절실'하다면서 우리 시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는 래퍼 이현준을 기용해서 'Main Stream'과 '번역 중 손실'이라는 표현으로 이들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앨범의 테마에 대해 길게 이야기했지만, 이 앨범이 단순히 주제만을 설파하려 하는 프로파간다는 아니다. 3H 정책의 랩 톤과 스피디함은 몰입감 강하게 다가온다. 특히 프로듀싱 팀 '가짜 인간'이 만들어 낸 신디사이저가 중심이 되는 사운드는 굉장히 뛰어나다. Doctrine에서 아르페지오를 통해 피아노라고 인식시켰던 악기가 신디사이저가 된다던가, 드럼 역시 신디사이저가 대체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연출해서 'only gives red pill'이라는 앨범의 목적을 훌륭하게 달성하고 있다.
 
여러 장점이 있는 앨범이다. 래핑 스킬이나 사운드 운용도 뛰어나고, 자신의 여러 생각을 녹여낸 가사와 이를 사이버펑크로 풀어내는 방식은 독창적이다. 동시에 한계도 뚜렷하다. 일부 아쉬운 부분들은 이 앨범 내부적으로도 한계를 느끼게 만들며, 앨범 외적으로도 성공한 컨셔스 힙합이 되지 못했다. 피쳐링 기용 역시 앨범을 유니크하게 만들기보다 잘 활용했다 정도에서 그치고 만다. 허나 확실한 건, 실존의 문제와 하고 싶은 일 사이의 끊임없는 고민이 오도마의 이야기들을 굉장히 진실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앨범은 비록 긴 생명력을 가지기에는 어려워 보이지만, 그래서 우리는 이 앨범에 주목해야 한다.
 
★★★☆(좋아요)
추천 트랙: Doctrine, 3H 정책, D.M.C, Hating mainstream is also too mainst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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