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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K-Pop은 음악 장르일까?

droplet92 2023. 7. 10.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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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이 음악의 장르인가? 꽤 어려운 질문이지만, 내 대답은 "아니"다. 물론 케이팝이라고 불리는 음악들이 공통점을 갖긴 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들을 '케이팝'이라는 이름으로 묶을 수 있는 요소가 주로 음악 외부에 있는 것 같다. 이 단어의 어원을 먼저 살펴봐야겠다.

케이팝의 시초는 서태지와 아이들로 보는 것이 정설이지만, 현재의 모습을 띄기 시작한 건 SM의 H.O.T.가 먼저다. 이들을 필두로 젝스키스, S.E.S., 핑클이 차례차례 등장했다. 이들은 그러면 어떻게 등장했나? 해외의 걸그룹 보이그룹을 차용해왔을 뿐이다. 주로 미국과 일본의 그룹을 참고해서 만들어진 이 아이돌 그룹들이, 국내 최초의 걸그룹 보이그룹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가요계의 주류는 10~20대에게로 넘어왔고, 걸그룹 보이그룹들이 이 바톤을 이어받았다. 엔터 기업들은 이들을 타겟으로 하는 그룹들을 꾸준히 만들어냈다. 그러다 JYP의 원더걸스와 SM의 소녀시대가 대박을 치면서 아이돌 그룹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H.O.T. 1집 [We Hate All Kinds Of Violence]. 타이틀곡 '전사의 후예 (폭력시대)'는 갱스터 랩과 학교 폭력에 반대하는 가사를 선보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케이팝은 왜 케이팝일까? 한국의 팝이기 때문이다. 즉, 이 용어는 아이돌 음악시장의 글로벌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10년대 초가 되면 한국의 가요 시장은 아이돌 그룹들이 지배하게 된다. 이들이 해외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팝이라는 표현이 사용됐고, 케이팝은 이들 아이돌 그룹들의 노래를 지칭하는 표현이 됐다. 아이돌 그룹이 처음으로 해외 진출을 한 건 아니다. 90년대에 먼저 대만 가요계와 교류가 있었고, 00년대로 들어오면서 보아를 필두로 여러 가수들이 일본에 진출했다. 새천년에 접어들면서 벌어난 의인 이수현씨의 사고 이후 일본 내에서는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되었고, 직후 겨울연가의 대히트로 한류가 불기 시작했다. 보아, 동방신기, 윤하 등이 이 시기에 일본 진출에 성공했다. 이후 빅뱅, 카라, 소녀시대 등의 아이돌 그룹들이 차례차례 일본에 안착했다. 동시에 SM은 중국 시장을 노리기 시작했고, JYP는 미국 시장을 노리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이 언어의 시작은 일본이다. 일본에서는 일본 진출에 성공한 한국의 아이돌 그룹들을 부를 말이 필요했고, 자신들의 팝을 J-POP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한국 아이돌 음악을 K-POP이라고 부른 것이다. 일본은 왜 한국의 아이돌에 열광했을까? 일본의 아이돌과 한국의 아이돌이 다르고, 그 차이점에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일본의 아이돌은 그들의 스토리를 파는 그룹이었다면, 한국의 아이돌은 비쥬얼과 퍼포먼스를 판매했다. 노래도 잘하고, 안무도 멋있고, 외모도 훌륭하다.
 

동방신기 일본 2집 [Five in the Black]. 동방신기는 이 앨범으로 일본의 상징적인 공연장 무도관(武道館)에 입성했다.


케이팝은 한국에 기반을 둔 비쥬얼/퍼포먼스형 아이돌 그룹의 음악이다. 언어는 한국어고, 노래는 멤버별 파트 분배가 되어 있으며, 장르는 기본적으로 댄스 팝이다. 동방신기는 R&B, 빅뱅은 힙합 기반이었어도 이들은 춤을 춰야 했다.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곡의 구조가 팝의 형태를 띄어야 했다. 동방신기도, BTS도, 트와이스도, 블랙핑크도 뉴진스도 전부 그렇다. 그러면 왜 이들을 K-Pop 그룹이라고 부르는가? 이들이 전부 한국어를 사용한다는 지역적 특성과 비쥬얼 아트가 중요시 되는 점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K-Pop을 음악 장르로 분류하지 않는 이유다.

화려한 안무만큼 음악도 화려해졌고, 케이팝을 맥시멀리즘의 음악으로도 정의하기 시작했다.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음악을 정의하다보니 댄스와 연관이 있는 힙합과 EDM 등 여러 다양한 장르 음악들을 차용하기 시작했다. 그 시대에 유행하는 장르를 빌려와서 댄스팝의 형태로 빚어낸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케이팝이 음악적으로 비판받는 지점이기도 하다. 돈은 많이 버는데 음악적 발전을 선도하는 경향이 적었다. 그나마 '맥시멀리즘', '일렉트로닉과의 융합' 정도의 키워드가 지난 25년간 케이팝이 만들어온 음악적 경향이었다.
 

f(x) 미니 2집 [Electric Shock]. 충격적인 4행시 사용과 일렉트로닉 장르의 본격적인 도입이 기존 팝의 문법을 깨부순다.


맥시멀리즘 음악하면 또 떠오르는 장르가 있다. 바로 하이퍼팝이다. 10년 중반 PC 뮤직 레이블을 기원으로 하는 이 장르는 귀가 아플 정도로 음악을 과하게 만들었다. 아방가르드, 인터넷 문화, 서브컬쳐 등의 특징을 가진 이 일렉트로닉 팝 장르는 서양에서 그 규모를 키우고 있었다. SM 또한 같은 시기에 아방가르드한 일렉트로닉 음악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f(x)부터 시작한 이 흐름은 레드벨벳, NCT로 이어져오다 마침내 aespa에 이르러서는 하이퍼팝과 결합했다. 에스파의 Savage는 SM의 일렉트로닉 음악적 성과이자 동시에 동 시대의 한 장르를 선도하는 그룹에 들어갔다는 의미에서 의의를 가진다고 본다. 에스파는 이후 Girls와 Spicy를 지나면서 회사 외부 요인에 의해 그 그룹에서 탈퇴했지만...

케이팝이 장르의 선도자 그룹에 들어간 건 아마 BTS의 Butter가 처음일 것이다. Butter는 코로나 시대에 디스코 리바이벌을 이끈 노래들 중 하나였고, 영어 가사의 범용성에 힘입어 세계 음악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 다음이 aespa의 Savage고, 다음이 바로 NewJeans라고 본다. NewJeans는 현재 광범위한 장르 트렌드를 선도하는 중이다. Ditto로는 저지 클럽, OMG에서는 UK 개러지, Zero와 Super Shy에서는 DnB. 일렉트로닉/힙합 장르를 댄스 팝 형태로 가공해서 글로벌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 팝보다 장르 음악에 가까운 점도 특징이다. 보컬의 특색은 죽이고 고퀄리티의 비트에 집중한다. 곡의 구조가 팝의 형태를 가지더라도 변화를 줄여서 그 구분을 흐린다. 보컬의 구분도 힘들고, 파트 체인지도 굉장히 부드럽다. 이런 장르 음악 지향성이 다른 아이돌 그룹들과 차별화되는 무기이기도 하다. 케이팝은 이렇게 2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자신들이 마주한 비판을 극복하려고 하는 중이다.
 

NewJeans 싱글 [Ditto]. 미니멀한 구성과 볼티모어 클럽 장르를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로 불러들였다.

 
정리하자면, K-Pop은 한국을 기원으로 하는 예술 장르이며, 댄스 팝에 비쥬얼 요소를 강화한 종합 엔터테인먼트다. 시각 요소에 과도하게 집중해서 음악적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최근 들어서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들이 등장하고 있다. 글로벌 음악 시장의 멤버로 들어선 만큼 향후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게 될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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