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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아틀러스에서 실시한 설문조사를 기억한다. ‘페르소나 3’ 시리즈를 리메이크한다면 어떤 작품이 좋겠냐는 내용이었다. ‘여신전생 페르소나 4 더 골든’이 시작이었던 내게 3편은 어린 시절의 꿈과 환상으로 가득 차 있었고 본편부터 포터블판, FES를 눈앞에 두고 여주인공과 후일담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했었다. 어떻게 답변했는지는 기억 나지 않지만, 이 세 가지가 모두 재발매됐다는 사실을 보면 모두가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포터블판은 2023년 리마스터됐고 본편은 2024년에 ‘페르소나 3 리로드’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됐다. 그리고 올 하반기 ‘에피소드 아이기스’라는 DLC로 FES의 후일담까지 발매되면서 시리즈 팬들이 그리던 원대한 복원사업도 끝을 맞이했다.
리메이크 작품을 리뷰할 때는 본편에 대한 비교가 필요할 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본편을 해본 적도 없고 이제 와서 할 필요도 없다고 느낀다. 페르소나 시리즈 팬도 ‘페르소나 5’에 와서 급증했기 때문에 대부분 2006년에 나온 본편을 플레이한 적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게임은 06년 크리스마스를 살짝 앞두고 국내 정식 발매됐는데 바로 얼마 안 가서 닌텐도 DS의 시대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플레이스테이션의 기나긴 침체는 2013년 말 PS4 발매 시점이 되어서야 그 막을 내렸다. 페르소나 5 유저들에게 ‘캐서린’ 스타일 카툰 렌더링이 아닌 페르소나는 ‘나의 페르소나는 이렇지 않아!’가 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페르소나 3 리로드’는 페르소나 시리즈를 담당하는 아틀러스 사 P Studio에서 개발됐지만, 기존 ‘페르소나 5’의 주역 개발진은 ‘메타포: 리판타지오’를 개발하는 별도의 스튜디오로 빠졌고 게임 엔진 또한 기존 자체 엔진에서 언리얼 엔진 4로 변경됐다. 엔진의 변화만으로 전반적인 게임 조작감에 영향이 있다. ‘페르소나 5’와 비교할 때 캐릭터 모델링은 큰 차이 없으나 광원의 사용(특히 하이라이트)에서 덜 날카롭다는 인상을 주며 캐릭터를 움직일 때도 약간 어색한 지점이 있었다(이로 인해 발생하는 버그에 대해서는 이후 게시할 에피소드 아이기스에서 다루겠다). 그러나 전술한 것처럼 게임 엔진의 변화를 여러 곳에서 감지했음에도 전반적인 사용자 경험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향후 시리즈의 전망을 밝게 한다. 언리얼 엔진의 최신 동향을 살펴볼 때 앞으로는 자체 엔진보다 상업 엔진을 사용하는 것이 개발 난이도 면이나 퀄리티 면에서 훨씬 우위를 가질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주요 개발진의 이탈이 리메이크 전체적인 방향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리마스터에 가까울 정도로 본편을 현대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는데, 링크 에피소드를 추가해 기존 단점을 보강하는 방식이나 시리즈 최초 되돌리기 기능을 추가해 편의성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동시에 리메이크에 걸맞게 테우르기아 시스템이라는 일종의 필살기를 도입해 여타 시리즈들과도 차별점을 두면서 전투 경험을 크게 향상시켰다. 다만, 리메이크임에도 끝을 모르는 타르타로스 던전은 시리즈 4/5편과 비교했을 때 다소 지루하다. 200층이 넘는 스테이지를 맵 자동 생성 알고리즘으로 채우다 보니 4편의 심야 텔레비전, 5편의 팰리스처럼 적당히 선형적인 레벨 디자인에 비해 반복이 잦을 뿐더러 의미도 찾을 수 없다. 페르소나 시리즈 최대 장점인 일상과 비일상의 조화가 무너지게 된다. 동시에 심야 텔레비전이나 팰리스와 메멘토스 일부가 그랬던 것처럼 특정 층마다 테마가 바뀌는 것도 일부 테마는 레벨 디자인이 던전 탐색을 방해한다는 점에서도 흥미를 반감시킨다.
3편 최대 장점인 시리어스 스토리는 본작에서도 가장 큰 무기다. ‘페르소나 5’에서는 초반의 상당히 어두운 분위기가 중후반부로 갈 수록 피카레스크 로망이라는 장르와 섞이며 다소 연해지는데, ‘페르소나 3 리로드’는 그런 것 없이 끝으로 갈 수록 더욱 어두워진다는 점이 이후 페르소나 시리즈들과 가장 큰 차이다. 물론 페르소나 4와 5에서도 사람이 죽지만, 그 희생자들에 대한 묘사는 대부분 ‘나쁜 사람’이거나 ‘잘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나 리로드에서는 ‘아는 사람’, ‘친한 사람’, 심지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사망하며 종국에는 주인공 또한 희생된다. 플레이 초반부터 ‘진짜?’하고 거두지 못했던 의심을 90여 시간 플레이를 마칠 때가 되어서야 진짜구나 하고 받아들였을 정도로 이후 시리즈와 다르다. 자연스럽게 캐릭터들의 묘사 또한 현실적인 편이다. 저마다 가정에 큰 문제가 있는 SEES 멤버들의 상처는 스토리가 끝날 때까지 치유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들과 다투게 된다면 상당히 오래 지속된다. 특히 유카리, 쥰페이, 아마다는 너무 현실적인 나머지 솔직히 좀 짜증난다. 그렇기에 쥰페이와 아마다가 스트레가 멤버들을 통해 겪는 고통을 극복하는 모습은 메인 스토리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고 여운이 짙다. (유카리는 후일담에서.)
권총 모양 페르소나 소환기를 관자놀이나 미간에 대고 당기는 페르소나 소환 연출은 역시 무지막지하다. ‘페르소나’ 개념을 시리즈에 완벽히 정착시킨 넘버 답게 페르소나와 섀도우, 와일드라는 컨셉과 해석은 시리즈를 어둡게 만든 원인이자 시리즈를 빛낸 정수이다.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재즈 랩을 선보이는 인트로 ‘Full Moon Full Life’, 시리즈 특유 벚꽃 내음 나는 ‘Want To Be Close’와 밤의 낭만을 그린 ‘Color Your Night’, 턴제 전투에 강한 리듬감을 부여해 지루함을 날려버리는 ‘Mass Destruction’과 ‘It’s Going Down Now’는 게임을 마치고 나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곡들이다. (‘It’s Going Down Now’가 틱톡에서 바이럴됐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단, ‘君の記憶(Memories of You)’의 리메이크는 다소 복합적이다. 원곡은 시리즈 최고의 넘버로 불려 왔고 스토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장송곡으로 상징적인 곡인 만큼 리메이크가 없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 타카하시 아즈미 보컬이 원곡 카와무라 유미와 비교해 음색과 창법, 특히 리듬감과 임팩트 있는 아티큘레이션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돋보이는 바이올린 선율 등 재편곡된 악곡은 부드러운 분위기를 내며 나름 괜찮긴 하지만 결국 원곡을 찾게 만든다.
‘페르소나 3 리로드’는 시리즈의 기반을 닦은 완성도 높은 원작의 다소 시대감이 느껴지는 부분을 모두 현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리메이크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품고 있지만, 기나긴 플레이에 마침표를 찍고 나면 단점들은 아주 사소한 투정이 된다. 캐릭터, 음악, 스토리, 일상과 비일상의 교류, 컨셉, 연출 모두에서 장인 정신과 완성도 높은 디테일을 선보이며 21세기 JRPG의 꼭대기에 올라선다.
★★★★
플레이타임: 90시간
트로피: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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