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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 시리즈의 핵심 개발진인 디렉터 하시노 카츠라, 일러스트 소에지마 시게노리, 사운드 메구로 쇼지가 개발사 ATLUS에서 스튜디오 제로라고 하는 별도의 팀을 꾸려 만든 신규 IP '메타포: 리판타지오'는 페르소나 5와 진 여신전생 시리즈의 중간에 놓여 있는 중세 판타지 JRPG다. 메타스코어 94점, TGA에서는 각본상, 미술상, RPG상, GOTY 후보, 디렉터의 일본 문화청 예술선장 수상 등 자타공인 현대 JRPG의 선봉에 서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25년 3월 기준으로 200만 장이 판매된 만큼, 진 여신전생/페르소나 시리즈나 세계수의 미궁처럼 핵심 IP로 자리잡을지 주목할 만하다.

 

페르소나 5와 비교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캐릭터 디자인, UI/UX, 사운드, 극의 진행 방식, 전투 형식, 스킬 시스템, 레벨 디자인 등 많은 부분에서 페르소나 5를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차이가 있다면 현대 일본이 아닌 정통 판타지를 배경으로 하는 점, 장갑 전차/아키타이프 등의 메카닉이 추가된 점, 주인공 뿐만 아니라 동료들의 기술도 커스터마이즈 가능한 점, 코옵 시스템은 유지되지만 연애는 배제된 점, 던전에서의 핵앤슬래시 전투 방식과 턴제 방식 + 여신전생 시리즈의 프레스 턴 시스템이 혼합된 점 정도를 꼽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최고의 장점은 스토리다. 페르소나 시리즈의 작중 플레이 타임이 1년이라면, 본작은 4개월 정도로 1/3 수준이다. 한 주가 5일, 한 달이 30일로 고정되어 있다. 플레이 타임 또한 60시간 수준으로 줄어든 편이다. 기간이 1/3임에도 플레이 타임이 3/4 정도인 만큼 밀도가 굉장히 높아졌다. 그리고 그 높아진 밀도를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많이 할애했다. 바질리오-주나의 스토리가 다소 빠르게 전개되는 부분을 제외하곤, 천천히 흡수되고 되새김질된다. 세계관 속에서 나타나는 모든 것들에 에피소드가 부여되어 있으며 그 모두를 전부 알려 주면서 끝이 난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와 이야기의 시작 시점에 던져진 떡밥들, 그리고 OST가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본작의 주인공 캐릭터는 플레이어와 별도의 이름을 가지며 성우 또한 존재한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자신을 투영시키지 않도록 견제하는 상황이 플레이어로 하여금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작품은 끊임 없이 판타지와 현실 세계를 병치한다. 주인공이 읽는 '환상 소설'은 현실 세계를 상기시키고, 작중 최강의 몬스터를 '인간'이라고 부른다. 동시에 주인공의 종족 '엘다족'은 다른 종족들이 외형적으로 확실하게 사람과 구분되는 것 - 요정, 뿔, 요정 귀, 날개, 박쥐, 쥐, 반짝이는 눈, 제3의 눈 등 - 과 달리 확실하게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다. '왜 최강의 괴물을 인간이라고 부르는지', '왜 내 이름과 주인공의 이름을 별도로 지어야 하는지', '엘다족은 왜 인간처럼 생겼고 멸종됐는지', '환상 소설과 고대의 유적들은 왜 현대 사회와 닮아 있는지'와 같은 질문들이 게임 내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모두를 후반부에서 설명해주는 기승전결 식 스토리 구조는 왕도적인 판타지 전개와 강하게 결합해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선형적인 스토리 라인은 JRPG 특이지만, 반지의 제왕의 절대 반지나 젤다의 전설의 젤다처럼 메타포에서 플레이어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건 '왕'이다. '왕'을 '선거'로 뽑겠다는 왕위 쟁탈전은 군주정와 공화정이 독특하게 섞인 형태다. 주인공 그리고 주인공과 대립하는 루이는 리더십/카리스마의 두 가지 형태를 보여준다. 주인공이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내향형 리더십을 대표한다면, 루이는 보스 같은 고전적인 카리스마를 대표한다. 제작자 측에서는 의도적으로 루이에게 '근본적으로 글러먹은' 이미지를 덮어 씌운 다음 주인공의 행동 방식을 '이상적'인 것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결말에는 지속적으로 '루이가 사라진다고 해서 한 번에 모든 게 정상화되진 않을 것'이라든가 '포기하지 않고 뜻을 관철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일종의 '회피'를 한다. 애초에 '잠자는 숲속의 왕자 전하'을 두고 '왕자 전하가 한 번만이라도 해봤으면 좋겠어 진짜... 너무 불쌍해' 식의 휠켄베르크의 태도는 그 뒤에 '왕자 전하는 억울하게 피해를 입었고, 왕가의 피를 가진 유일한 사람이니까 원래 왕이 될 사람이고, 환상 소설을 읽으며 이상적인 나라를 만들고 싶어하던 분'이라는 식의 변명을 추가한다고 하더라도 '이상적'인 모습과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진다. 물론 중세 판타지인 만큼 중세라는 시대와 판타지라는 허구를 고려하면 이해가 안 될 것도 없지만, 작가가 계속해서 '허구'와 '이상'을 '현실'과 비교시키는 만큼, 이런 접근은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이건 아다리가 잘 맞아서 잘 돌아가는 느낌이다. 시스템이 아니라 개인의 힘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일본이 군주제 국가라서 그런가 싶기도 한데 이건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메타포는 루이와의 최종 전투 이후 1년 후의 모습, 그 다음 해의 모습을 그려 보이면서 반지를 파괴하고 끝 or 공주님을 구하고 끝 식의 엔딩이 아니라 '이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강조한다. 주인공은 '왕을 지지하지 않아도 자신의 미래를 믿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국민들로부터 발생한 불안은 거대한 힘이 되어 왕에게 모이고, 왕은 그것을 바탕으로 카리스마 있게 행동하며, 국민들은 왕에게 기대면 해결해준다는 사고 회로를 갖게 된다. 이 루프에서 벗어난 유지프, 퍼리퍼스, 니디아 같은 종족은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고 스스로의 생존 방식을 길러야 했다. 주류로부터 은둔한, 은둔 당한 이들은 약육강식의 방식으로 동물과 같은 별도의 사회를 구축하는데, 그야말로 '미래 없이' 현재를 사는 모습이다. 주류사회 또한 신성교에 의탁하며 삶을 살아가는 굉장히 중세스러운 모습이다. 주인공 일행은 계몽 의식을 바탕으로 신성교를 개혁하고, 사회 전반에서 개인을 부상시킨다. 이 '근대로의 이행'이라는 적당한 템포는 '선거가 전부가 아니고 그 후의 개개인의 삶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새삼스럽지만,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기도 하다.

 

2가지 측면에서 후속작을 기대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법과 같은 근대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카테리나가 말한 '외해 바깥에는 다른 나라들이 있다'는 언급이다. 만약 이 판타지 세계관이 로우 판타지에서 하이 판타지로 넘어가는 중간으로 이동한다면, 그 단계에 있는 가장 거대한 이벤트 '산업 혁명'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마법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으니 마그라를 사용한 '마법 혁명'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장갑 전차라는 게 이미 스팀펑크스럽지만... 비주얼이 다르다 비주얼이. 카테리나가 언급한 '왕국 바깥의 다른 나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주인공이 카테리나가 된다거나 주인공-카테리나의 커플링이 생긴다거나 하면 좋을 것 같다. K서린과 C서린을 합친 다음에 치에랑 이치코를 합친 듯한 베이글 캐릭터를 이렇게 낭비하면 안 된다!) 단편으로도 충분히 좋지만, 이 이야기에는 조금 더 욕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메타포: 리판타지오'는 상상을 통해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마법이 음악'이라는, 음악의 힘을 아는 멋진 영웅담이다. 주어진 아픔을 진정으로 마주했을 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이 태어난다는 성장 소설이다. 끊임 없이 다투고 중재하면서 나아가야 한다는 빈말을 묵묵하게 실천해 나가는 여정이다. 그 막연한 추상에 인생을 내건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다.

 

★★★★

 

플레이타임: 88시간

트로피: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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