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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사유

<논리-철학 논고>를 읽고

droplet92 2023. 12. 29.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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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다 못 읽고 때려쳤었는데, 드디어 다 읽었다!

집합론, 범주론, 수리논리학에 관심을 가졌던 경험들과 불완전성 정리에 대한 증명을 직접 해 봤던 경험이 글을 보다 쉽게 읽는 데 도움을 주었다. 예전에 잘 안 읽혔던 책들을 다시 읽을 때 쉽게 느껴지는 경험을 종종 하는데, 그 때마다 그래도 내가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칸트, 헤겔과 같은 이전 시대의 철학자들은 너무 뜬구름 잡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비트겐슈타인은 공학도에 논리 이야기라 그런지 참 맘에 들었다. 수학에 관해 한 이야기 중에서 집합론은 갖다 버려야 한다는 말만 빼고. 아무리 생각해도 현대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둘은 집합론과 확률론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성과는 러셀&화이트헤드 등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명료하고 깔끔한 형태의 논리로 분석 철학의 기틀을 잡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림 이론도 유명하긴 한데, 이 정도 생각은 다들 한 번씩 해 보지 않나? 그 생각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발표한 점이 엄청 대단한 거다. 몇 줄 적어보려 하면 곧바로 ‘나의 세계의 한계’를 경험하게 된다.

일단 대부분의 내용에 공감했다. 물론 내가 러셀이 그랬던 것처럼 잘못 받아들이고 있을 수 있음을 인지한다. 하지만 만일 잘못 받아들였다고 해서 무덤에서 뛰쳐나와 한 소리 할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정원사나 병원 일 등을 계속 해 온 경험이 철학자로서는 아주 큰 무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후기 비트겐슈타인 철학도 그 덕을 많이 보지 않았는가.

다음 달에 오스트리아, 영국, 노르웨이 등에 가는데 기회가 된다면 비트겐슈타인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다. 일단 비트겐슈타인 하우스는 큰 의미는 없겠지만 근처라 가볼 것 같고, 케임브릿지는 갈 예정이 있어서 뭐 있나 찾아봐야겠다. 앨런 튜링도 케임브릿지 출신인데, 컴퓨터공학도로서 놓치면 아쉽다.

말년에 괴테의 색채론을 읽고 관심을 가져서 책을 썼던데, 다음엔 이걸 읽어볼 생각이다. 일단 괴테의 색채론은 내가 너무 궁금해서 읽어봤다가 크게 실망했던 책인데, 비트겐슈타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윤리학+미학에도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미학이야 나도 관심을 가지는 주제인데, 윤리학 이야기는 그런갑다 하고 읽다가 요즘 내가 겪는 고통이 윤리에서도 기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한 번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독일어 공부도 해야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아주 기초적인 단어 몇 개 조금 배우니까 해설 읽는 데 반가움이 있었다. “뭐 이렇게 단어가 길어” 하다가도 아 합성어구나 하고 깨닫기도 하고, 독일어로는 이렇게 발음하지 하면서 한 번 읽어보기도 하고 하여튼 재미있었다.

죽고 싶었던 시기에 다시 이 책을 접하고 대가리 굴리는 동안 마음이 평온해졌다. 시모키타 디깅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죽고 싶어했던 사람이 쓴 책이라 그런가. 아니 근데 어떻게 병에서 중위까지 올라가지. 하여튼 여러모로 천재긴 천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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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2~3주 동안 정신건강이 좋지 않았다. 사실 연례행사긴 한데, 여러 주변 상황들이 겹치고 어떤 일이 트리거가 돼서 빵 하고 터졌다. (원인 제공자는 아마 모를 거다. 매번 이런 식이다. 요즘 사람들은 개인주의라는 이름 아래에 자신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례한지 모른다.) 살아오면서 자살에 대해 생각해본 게 처음은 아니다. 이전까지는 ‘자살하면 장례식에 다들 와 주겠지?’ 정도에서 마음이 놓여서 그런 생각이 도로 들어가곤 했는데, 이번엔 좀 달랐다.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다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렇게 죽을 거면 그 전에 병원에라도 한 번 가 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주변 병원을 찾아봤다. 정말 찾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날이 마침 뉴진스 리믹스 앨범 발매날이어서 그래 이것만 듣자 하고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앨범 발매만 기다렸다. 그리고 디토를 딱 듣는데 진짜 눈물이 날 것 같은 거다. 그래서 그날은 그 앨범만 몇 시간이고 들었는데, 문득 밖에 눈이 내리는 걸 깨달았다. 그때가 밤 11~12시 정도였는데, 눈을 맞으면서 노래를 듣고 싶어서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근데 진짜 개춥고 눈도 많이 와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1시간 넘게 밖에서 사진도 찍고 하면서 돌아다니고 있는데 굉장히 기분이 좋아져 있는 걸 알아차렸다. 그 이후로는 슬더스 질러서 그거 계속 하고 있고, 23년도 시모키타자와 밴드 플레이리스트를 찾아서 그걸 계속 듣고 있다. 그 플리만 들은 게 아닌데도 4일만에 180곡(절반) 정도 들었으니깐. 아무튼 정신건강은 나 스스로 말하기도 그렇지만 꽤 좋아졌다. 그래도 스스로 객관적인 판단을 잘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다시 같은 상황이 온다면 정신과에 방문할 거다. 가족 중에도 방문했던 사람이 있어서 별로 거부감은 안 든다. 애초에 내 문제는 나에게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에게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불교철학 쪽에도 관심을 가져볼까 생각이 든다. 스스로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니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런 글은 아무도 안 읽겠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말은 한 번 해야 할 것 같아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적었다. 애초에 안 읽는 게 더 좋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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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올린 플리에는 한 줄 코멘트도 열심히 고심해서 달아놨다. 가장 쓰기 힘들었던 게 접속 by 김사월이랑 恋は永遠 by 銀杏BOYZ다. 몇 개는 너무 추상적으로 써 버려서 이걸 해설을 달아야 하나 하고 썼다가 좀 그래서 다시 지우기도 했다. 아무튼. 접속의 코멘트는 resonance frequency 라는 단어에서 출발해서 완성시켰다. 정말 얼마 전에, 자살할 생각을 그만두고, 나는 사람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정말 0으로 접었다. 앞으로 타인에게 어떠한 기대도 안 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인간관계 속에서 받는 고통은 전부 나의 기대감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마침 이 노래의 가사가 “같은 곳에서 같은 속도로 심장이 뛴다면 당신의 꿈 속으로 접속할 수도 있겠죠” 하지 않는가. 요새는 라디오를 들을 일이 잘 없지만, 라디오를 듣기 위해서 주파수를 직접 맞춰서 듣곤 했다. 근데 이 주파수가 막 잘 맞지는 않아서 대충 맞추면 깨져서 들리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운이 좋아서 훨씬 선명하게 들리기도 한다. (물론 전부 주파수의 문제는 아니긴 하다.) 주파수를 맞추는 일은 해당 주파수에 맞춰서 공진시키겠다는 뜻인데, 이게 맞춘다고 맞춰도 내 마음같지 않다. 인간 관계나 사랑도 서로의 (미래의) 주파수를 맞추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어느 정도만 맞춰두고, 어떤 사람은 도무지 안 맞기도 하고, 어떤날은 마음이 너무 잘 통해서 너무 놀랍기도 하고. 근데 사람은 DNA와 성장환경 2가지가 얽혀 있으니, 이 주파수가 나랑 맞는 일은 너무 어려운 거다. 특히 나는 나를 많이 사랑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열심히 찾으니 대중적인 관심사와는 더 떨어져 있어서 더욱 어렵다. 아무리 남들 이야기에 장단을 맞출 수 있다고 한들 내 주파수와는 AM과 FM의 차이만큼, 아니 5GHz 와이파이와만큼 차이나는 거다. 나와 정확히 주파수가 맞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나밖에 없고 그래서 개성 있는 거다. 그래서 주파수가 겹치는 일은 굉장히 귀한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엊그제도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혼자 공연을 보고 왔다. 같이 가자고 물어보는 일은 이제 안 할 거니까. 인생은 나와 공진할 수 있는 사람 단 한 명을 찾으면 성공하는 것 같다. 이런 못난 마음을 다 용서해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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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알고리즘 문제를 생각하다가 갈라파고스화 이야기를 생각했고, 일본의 케이스를 생각했다. 잘라파고스에 대해 생각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관점이 꽤 달랐다. 어렸을 때 친구들 셋한테 웨딩드레스를 만들어주겠다고 해서 의상학과에 진학해 실제로 세 명의 결혼식 날 웨딩드레스를 선물해준 일을 봤다. 이 정도의 일은 흔하지 않으니 일본에서 이슈가 된 것이지만, 잘 생각해 보니 일본이나 해외에서는 이런 일들이 종종 보이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는 기억날 만한 사건이 별로 없었다. 자신만의 삶의 목표를 하나 만들고, 설령 목표가 바보같더라도 열심히 달리는 일 말이다. 갈라파고스화가 되고 취향이 파편화된다는 건 이런 의미일 텐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원웨이 로드맵 인생이 아니던가. 신자유주의 사회답게 목표치는 또 존나게 높아서 대다수는 빛나는 아이돌들을 위한 그림자가 되어줄 뿐이고, 그렇게 된 자신을 재능이 없니 노력이 부족하니 탓하고 있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개인주의를 겉모습만 수입해 와서 서양식 개인주의와 일본식 메이와쿠의 단점을 모두 가지게 된 것 같다. 군대에 가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전역하고 대학 졸업을 앞둔 지금 나는 내 장점을 다 잃어버리고 사회에 귀속되는, 그것도 사회가 이젠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 부속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가장 무서운 건, 마음 한 켠에서 이를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거다. 지금은 정신이 좀 든다. 내년을 위한 목표들을 올해 얼마 안 남은 시점에 세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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