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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야마 슈지의 저서 중 유이하게 정발된 2권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는 특히 절판이라 구하기 힘든데

시립 도서관에서 손쉽게 빌렸습니다

상호대차 만세

 

두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이 사람 나랑 농담따먹기 하자는 건가?'

처음에는 진지하게 궤변을 늘어놓고 있으니

일단 의도가 무엇인지부터 의심가더라구요

도대체 무슨 책인지조차 아리까리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선동가의 책이라고

농담도 물론 많지만 주제만큼은 본심이라고

 

실제로 책 발매 당시에는

이 책을 읽고 가출해 그를 찾아간 청소년들이

꽤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들에게 받았던 편지나 시구를 공유하기도 하니 말이죠

 

가출을 제시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가정'이라는 게 타의에 의해서 마련된 것이니

자립을 위해서는 '집'을 나와야 한다는 겁니다

다만 그 시점이 좀 빠를 뿐이죠

대학교에 들어가 취업하고 자립하는 게 아니라

가능한 빨리 나와야 한다 이겁니다

 

그가 쓰는 표현과 벌이는 내용들은 다소 당혹스럽습니다

가출을 해서 창녀가 돼도 그게 낫다던가

파칭코나 경마 등 도박에 대한 얘기를 막 늘어놓거든요

특히 경마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에서는 경마 얘기 읽다가

두 번은 졸아버린 것 같습니다

 

(만약 우마무스메를 좋아해서 경마는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1930~70년대 경마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만 알려둡니다

메지로 가문의 두 말이 나오긴 하는데 훨씬 조상이에요)

 

테라야마의 가정사, 살아온 환경에 대한 이야기

가끔은 문란한 성생활 이야기, 대부분 도박 이야기

읽다보면 뭐하는 사람이야 싶지만

영미권과 구라파, 일본의 문학가, 철학가, 평론가, 미학가,

정신분석가 등등을 인용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비범한 인물임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학생 시절부터 시로 유명해진 그는

와세다대학을 나와서 극단 텐조사지키를 설립하고

일본 쇼와 시대 아방가르드 연극, 영화로 명성을 떨칩니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전후 일본

60~70년대 전학련과 전공투로 이어지는 신좌파 시기로

두 번의 안보투쟁을 거치며 일본내에

패배주의적 의식과 사회 혼란이 펼쳐졌습니다

 

그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학생들에게

자기 삶의 주인 의식을 고취함과 동시에

'가출'이라는 방식으로 실천할 것을 강조한 겁니다

 

이외에도 테라야마는 반대쪽 극단을 가감 없이 드러내어

악덕이란 무엇인지, 좋은 자살이란 무엇인지 등

스스로의 생각을 드러내면서

사회 규범이 언제든 변화하고 있으니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을

자살 그 자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좋은 자살이 아님을

주장합니다

 

(자살에 대해 한참 떠들고선 자살은 자살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며

자신이 생각했을 때 좋은 자살의 예시를 4가지 정도 들고

자살하지 말아야 할 경우를 한 14가지 정도 나열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살을 도피의 수단으로 쓰지 말라고 말합니다

추가로 그가 존엄사를 주장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 책을 읽는 동안

이 양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는 해도

계속 반쯤 정신 나간 사람처럼으로만 보이는데

(뜬금없이 살인엔딩으로 끝나는 판타지도 몇 번 있습니다)

가출 예찬에서 딱 한 번

자기가 받은 편지 내용에 진지하게 반박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때만큼은 1~2페이지 동안

총기가 확 돌아오는 모습을 본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여태까지 대부분이 농담이었음도 재확인했구요)

 

저도 언젠가부터 '집'을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 왔고

지금도 '가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준비된 가출은 그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겠지만

몸을 팔기는 싫으니까요

정서적 독립 이전에 경제적/물리적 독립을 이루라는 뜻에서 본다면

물리적 독립이 왔다갔다 해서 그렇지

경제적 독립은 꽤 오래전부터 이루긴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주제에 꽤 공감하면서 읽었네요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들인데

드디어 다 읽어봤고

아쉬운 점은 시가 잘 와닿지 않는 느낌?

원서를 보면 이해가 좀 될까 모르겠습니다

테라야마 슈지의 영화나 시집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요건 원문으로 가야겠죠,, 쉽지 않다

 

원래 시로 뜬 만큼 문학 쪽에서도 꽤 치는 분이랍니다

영화나 연극은 현대 일본의

아방가르드 영화, 애니메이션 쪽에 영향을 많이 준 듯하구요

파면 팔 수록 흥미롭습니다

 

사실 전공투 시대 공부하려고 읽은 거긴 한데

큰 관련은 없었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았거든요

그래도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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