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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현재 진행형인 이 사건은 규모가 워낙 크고, 알려진 부분보다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이브 편을 들거나 민희진-뉴진스 편을 들게 만드는 이분법적인 여론 또한 제가 가진 생각을 말하기 껄끄럽게 하기도 했구요. 그러나 어도어의 구조에 변화가 생긴 이후부터 민희진 쫓아내기 방식, 돌고래유괴단과의 마찰 과정, 민지와 다니의 포닝 메시지, 하니의 유튜브 발언까지 이 정치적인 문제에 제가 조금이라도 끼어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제 블로그가 뭐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뭐라도 해야겠습니다.
 
1. 멀티레이블 운영 방식에 대해
 하이브의 멀티레이블 제도의 도입 취지는 분명 문화적 다양성을 늘리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단일 회사 체계에서 만들어지는 수직적인 계층 구조를 깨고 싶었던 거겠죠. 못해도 표면상으로는. 그러나 하이브 산하 회사의 아이돌들은 전부 방시혁 프로듀싱이라는 택이 붙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좋게 말하면 방시혁의 프로듀서로서의 개성이 뚜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각 레이블이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는가? 여기에는 의문부호가 붙습니다. 그냥 그룹이 많아지고 회사가 커졌다는 양적 확장 외에 질적 확장이 있었는 지에 대해서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두 가지 이유를 들겠습니다. 하나는 인수한 회사들의 활동이 '예술적으로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아오지 않았다는 점, 다른 하나는 이들을 '케이팝'이라는 카테고리 아래에 묶는 데 어떠한 의심의 여지도 없을 만큼 개성적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스스로도 너무 야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럼에도 이렇게 말한 이유는 '엔터테인먼트'로써라면 몰라도 객관적으로 '예술'로써 보여준 것이 적다는 생각에 변함 없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평가'에 대한 부분은 그냥 제 입장에서 편한 근거들을 들겠습니다. 음악 쪽으로는 케이팝이라는 분야가 국내외 대중적인 매체들에서는 충분히 다뤄져 왔지만, pitchfork 같은 매니아 매체에서는 대개 배척당해왔습니다. 4세대 이후, 특히 뉴진스의 Ditto가 '볼티모어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성공한 이후로는 케이팝 쪽에서도 곡 설명란에 장르 표기에 진심이 된 듯해 보이지만, 각 회사가 충분히 바이럴과 챌린지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 피프티피프티의 Cupid 외에는 특별히 큰 성과를 거둔 것 같지 않습니다. 엄청난 인기를 가졌음에도 해외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은 것만으로도 역대급이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인기는 어디서 기인한 것이냐고 했을 때 복합적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노래도, 춤도, 뮤직비디오도 각각 떼어놓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밀리는 경우가 많지만(실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에), 이걸 한군데에 모아놓았으니까요. 종합예술이긴 하지만, 예술보다는 엔터테인먼트적 성격이 더 강해서 평가 측면에서 약하더라도 대중적으로는 큰 인기를 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과 엔터테인먼트의 차이가 무엇이냐? 고 물어보신다면 개인적으로는 예술보다 '체험성'과 '공유성'에 포인트를 두는 게 엔터테인먼트라고 생각합니다.)
 
 '케이팝'이라고 묶인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아이돌'로 묶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케이팝'이라는 장르와 '아이돌'이라는 장르는 불가분의 관계고, 이 씬이 가지고 있는 여러 특징들이 모두에게 공유됩니다. 타이틀 뮤비 찍어야 되고, 요즘에는 EP 위주로 활동하고, 곡이 쌓이면 투어를 돌고, 센터는 누구고, 소속사는 어디고, 주로 트위터에서 활동하고 등등등... 장점은 있습니다. 새로 아이돌이 나온다고 했을 때, 예를 들어 세이마이네임이라는 아이돌이 새로 나오는데 거기에 아이즈원 출신 혼다 히토미가 있다더라, 그룹을 팔로우하고 싶어졌다고 생각한다면 전혀 어려울 게 없습니다. 유튜브 인스타 트위터 팔로우하고 티저 영상 나오는 것들 쫓아가면 되거든요. 대충 굿즈로 응원봉 나올 거고, 음반은 사진집처럼 나올 거고, 랜덤 포토카드에 최애가 안 나오면 당근이나 번개장터 가서 교환이나 '양도' 하면 되겠죠.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케이팝 생태계인거죠.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니에요. 일본 애니메이션, 아이돌 시장도 비슷한 걸요. 다만, 모든 것이 예측가능하다는 겁니다. 멤버만 바뀌고. (사실 멤버가 제일 중요함... 그걸 아니까 나머지는 다 예측가능하게 만들어놓은 걸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요새는 아이돌 멤버가 직접 프로듀싱도 해서 좀 낫지만, 대개 유행하는 음악 장르를 좇고 해서 '뚜렷한 그룹 색깔'을 가지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가까이서 보는 팬들에게는 다 달라 보이겠지만 (마비노기 색깔 맞추는 것처럼) 멀리서 보는 대중들 입장에서는 외모 말고는 글쎄...
 
 케이팝을 안 듣던 시절의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솔직히 적어보자면 연예인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가수나 아티스트가 아니라 유명한 사람들,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긴 했지만... 케이팝이라는 바운더리 밖에 있는 대중들이 보는 시선은 여전히 이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게 말하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비지니스가 가능한!), 나쁘게 말하면 공장제 소품종 대량생산 시스템(비지니스에 불과한). 하이브의 멀티레이블 운영 방식은 여기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뉴진스와 민희진, 그리고 어도어는 굉장한 컬러감을 내면서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는데, 이들을 다시 도려냄으로써 보건대 벗어날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구요.
 
 하나만 더 이야기하자면, K-POP에서 K-를 떼겠다고 한 선언, 캣츠아이를 보면서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근데 K-만 뗀 게 맞는지 모르겠네요. 종합 엔터사다, 게임사다 하는 걸 보면 K-POP을 송두리째 들어내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면 K-POP을 굳이 비지니스로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화투 팔고 장난감 팔던 회사에서 세계적인 게임 회사가 된 닌텐도나 농산물 팔다가 반도체와 스마트폰 팔고 있는 삼성처럼 사업을 변화하는 게 문제는 아니지만, 일단 케이팝이라는 문화산업을 일반적인 비지니스처럼 다루려고 한다는 생각은 경계심을 갖게 합니다. BM만 주구장창 이야기하는 한국 게임 산업처럼.
 
2. 뉴진스 활동 피해
 어도어 주총을 열고 민희진을 CEO에서 사임시킨 이후 현 체제로 들어서면서부터 여러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영과 크리에이티브를 분리한다면서 민희진에게 내민 계약서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점, 돌고래유괴단과의 마찰 과정에서 기존 발표한 작업물들에 피해를 끼쳤던 점, 멤버들과 소통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점, 하니의 유튜브 발언처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문제삼을 수 있는 부분을 조사조차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통해 새 경영진이 뉴진스와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타 그룹(뉴스에 따르면 아일릿)의 매니저가 '무시'하라고 말했다는 지점은 특히 '매니저 개인적인 원한'인지 '그룹의 압력'인지 의심을 갖게 만들며, 이를 어도어 임원진에게 이야기했더니 '증거가 없어서 어쩔 수 없다'는 태도는 '새 임원진의 무능'인지 '그룹의 뜻'인지 의문을 품게 만듭니다.
 
 핵심 임원진의 변화에 따라 차기작이 지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기존에 하이브 측에서 했던 말(새 프로듀서 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니 1년 6개월 정도 긴 휴가를 주겠다)을 고려해본다면 BANA와의 협업 관계를 백지로 만들고 새 프로듀서를 데려오는 일이 경영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인지, 뉴진스 멤버들과 뉴진스라는 브랜드를 꾸려 나가는 데 있어 합리적인 선택인지 물음표 짓게 합니다. 그래미 프로듀서를 데려다주겠다는 발언부터 예술과 엔터테인먼트를 자본으로 치환할 수 있다는 식의, 그룹의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식의 태도고 이건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기만이자 윤리 의식의 결여입니다. 그 애티튜드로 뉴진스에 피해를 주는 일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뉴진스 멤버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춤추고 노래하는 일인데, 하이브 그리고 어도어의 새 경영진들의 행적이 쌓여갈 수록 뉴진스 멤버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미래가 불투명하게 그려집니다. 단순한 걱정에서 그치지 않고 여러 사건들을 통해 실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하이브 측에서 뉴진스를 보호하는 언론 보도는 단 하나도 없고, 민희진을 공격하거나 뉴진스가 민희진과 작당모의를 한다, '뉴프티뉴프티'라는 멸칭까지 쓰고 있습니다. 심지어 오늘은 어도어 측 보도자료로 하이브에 대한 공격을 중지해 달라는 투의 기사까지 내보냈습니다. 판사 출신 변호사 SNS 게시글로 맞는 건 '일단 공격 중지하라'고 하는 주제에, 뉴진스 욕 먹는 기사들은 왜 늘어나기만 합니까? 멤버들이 켰던 유튜브 중간에 '초상권 저작권 당사자'라는 법률적으로 맞지 않는 표현은 쏙 빼놓고 마지막에 2주 준다는 것과 당시 기준 주총이 하루 남았다는 사실만(이건 언급한 것도 아님) 가져 와 법률 자문이 된 것 같다, 민희진과 이야기된 게 아니냐고 여론전을 펼치고 기사를 내는 것부터 개인적으로 이해 되지 않습니다. 설령 이야기가 다 됐고 법률 자문까지 마쳤다고 하더라도 자기들은 법률 자문 구하고 전략적으로 나가도 되지만, 뉴진스 멤버들은 안 된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뉴진스 멤버들은 어도어와 계약 관계이지, 어도어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3. 개인정보 침해 문제
 개인정보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카카오가 이번에 전국 4천만 명 이상의 개인정보를 중국에 유출했고, 그전부터 심심하면 사이트 털려서 이게 개인정보인지 공공정보인지 납득 가지 않을 수준에 와 버리긴 했지만, 중요합니다. 메신저 개인 대화 내역도 개인정보에 해당합니다. HTTPS 같은 보안 기술들도 통신 내용을 암호화하기 위해서 만들었죠. 물론 이것도 정부가 ISP를 통해 '합법적으로' 검열하고 있긴 합니다만. 이런 씨발 우리나라는 군대에서 그렇게 통신보안을 외치면서 보안을 좆도 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IT 기업이 되고 싶다더니, 이번 여론전에서 개인정보 유출하는 모습을 보면 이미 훌륭한 IT 기업이 된 것 같습니다.
 
 민희진 하 어도어의 공식입장문 중 하나(https://namu.wiki/w/%EB%AF%BC%ED%9D%AC%EC%A7%84-HYBE%20%EA%B0%84%20ADOR%20%EA%B2%BD%EC%98%81%EA%B6%8C%20%EB%B6%84%EC%9F%81/%EC%A0%84%EA%B0%9C/2024%EB%85%84%207%EC%9B%94#toc)에 따르면 '하이브는 [민희진 대표가 3년 전 초기화해 반환한] 이 노트북을 포렌식하여 개인적인 대화들을 복구하였을 것으로 강하게 추정됩니다. 이는 전자기록 등 내용탐지에 해당하는 중대한 범죄이자 불법행위입니다. 그런데 하이브는 포렌식을 하지 않았다며 카카오톡 대화들이 하이브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되 있었다는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이브는 개인적인 대화들을 상시적으로 수집하고 이를 자신의 서버에 저장하여 오다가 이를 유출까지 하였다는 것인바 이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정보통신망법위반(비밀침해)에 해당하는 중대한 범죄이자 불법행위입니다.'라고 명시한 바 있습니다. 사내 감사 시점에 민희진은 업무용 노트북을 반환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HYBE 역시 4월에 카카오톡 메시지를 포렌식을 통해 확보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비슷한 사건을 가져와 봅시다. YTN 보도(https://www.ytn.co.kr/_ln/0103_202309181833516000)에 따르면 '영업비밀 유출이 의심돼서 하드디스크를 허락 없이 살펴본'다면 '형법 제316조 제2항'과 '정보통신망법 제49조'에 해당하는 위법행위가 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해당 사건에서는 다양한 이유를 들어 정당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결론났는데, 본 사건에서는 업무상 배임이 인정된 것도 아니고, 각종 사생활(무속신앙 관련 내용을 포함한 사적인 대화 내용) 유출 내역이 해당 사안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그리고 채증한 기록물을 보도자료를 통해 유출한 것이 얼마나 적법한지에 대해, 물론 저는 판사도 아니고 법률전문가도 아니지만, 그래도 정보보호 잠깐 했던 사람으로서 의문입니다. 보다 유명한 사건이 비슷한 시점에 있었습니다. 강형욱 씨의 회사 관련 논란 중 사내 메신저 대화를 무단으로 열람한 부분인데(https://zdnet.co.kr/view/?no=20240527162241) 이 글에서도 역시 비슷한 논조로 법적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멤버들의 연습생 시절 영상과 사진, 의료 기록을 유출시켰다는 것도 적어야겠네요.
 
4. 마치며
 이외에도 문제삼을 건 있겠습니다만, 저는 이 정도 이유로 하이브를 비판하고 싶습니다. 1번의 이유로 하이브 프로듀싱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2번의 이유로 (하이브&새 경영진이 이끄는 어도어)와 뉴진스 사이의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며, 3번의 이유로 하이브가 불법적인 행위를 벌이고 있다고 판단하여 하이브의 발언과 행동을 신뢰할 수 없게 됐습니다.
 
하이브와 어도어 새 경영진을 규탄하며 향후 하이브의 작업물을 보이콧합니다.
뉴진스가 가는 길을 함께 걷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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