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추리 소설을 막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읽었던 소설이 추리 소설입니다. 히가시노 케이고는 한 권도 읽은 적 없습니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요네자와 호노부와 키시 유스케의 책들을 주로 읽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키시 유스케의 악의 제전이 최고지만, 요네자와 씨의 보틀넥이나 빙과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강해지지 않으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산 채로 잡아먹히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은 주관성을 잃고 역사적 원근법의 저편에서 고전이 되어 간다.“ 같은 강렬한 문장들을 좋아합니다. 이런 말을 고등학교 시절에 쓸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하다카노 라리즈 리뷰를 준비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책이고 집에 있기도 해서 가장 먼저 읽었던 책이기도 합니다. 문장에서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저 둘은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과 그 강렬한 감정이 어떻게 도려내지는지를 말합니다. 일본의 전공투 시절 학생운동 열풍(?), 절대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사건이 역사로 편입되면서 개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 그 씻을 수 없는 상처는 개인에게만 남는다는 것…
고전이라는 말은 멋있지 않나요? 클래식이라는 표현도 그렇고. XXX의 ‘수작’에는 “음악하는 학생 정도 명작들이나 정독 수작들은 작품으로 치지도 않지“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것도 좋아합니다. 명작이라는 표현을 남발하거나 수작이라는 표현을 남발하는 두 부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자는 경험 부족, 후자는 자신감 부족이라고 생각하고. 저 가사는 명작과 수작의 이분법에서 벗어나고 있고. 뭐 암튼 고전은 명작의 다른 말인데, 이름난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로도 들립니다.
시간은 곧 망각입니다. 그리고 이건 한계이자 축복이죠. 어떤 것도 시간을 이길 수 없습니다. 시간이 센 건지 내가 약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이 사실이 싫었고 그 다음엔 고마웠다가 지금은 그렇다는 사실로써 인지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가치평가를 하지 않게 됐습니다. 평론은 예외네요. 암튼 무언가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일들을 남일처럼 생각하는 건 아닌데 감정을 기울이려고 하지는 않는 거 같습니다. 만약 그것에 감정을 쏟는다면 그건 오롯이 개인적인 것이지 사회적인 것이 아니에요.
학창시절에 있었던 세 가지 일은 뭔가 멍했습니다. 연평도가 포격당한 것, 세월호가 침몰한 것, 박근혜를 탄핵시킨 것. 연평도 때는 집에 돌아와서 하루종일 뉴스를 봤습니다. 저 혼자 그랬던 거 같은데 전쟁이 날 것 같았어요. 세월호 소식은 역시 학교에서 들어서, 뭔가 지나가듯이 아무것도 아닌 듯이 들어서 지금까지도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습니다. 박근혜 탄핵은 뭐 시위도 나갔고 결과적으로 첫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직접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멍함은 역시 이러한 사회적 사건이 나를 바라볼 때 단일 객체가 아니라 거대한 유체의 일부로 바라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관성을 잃고 역사적 원근법의 저편에서 고전이 되어 가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한다는 아닌데 저는 그래요.
어제는 세월호 11주년이었습니다. 사실 몰랐구요, 다들 그렇게 말하길래 그렇구나 했습니다. 왜 이렇게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 아쉬워서 붙잡고 있는 걸까. 놔줄 때가 된 건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기엔 너무 어린 학생들이 너무 허망하게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는데 그걸 아무 일도 아닌 걸로 만들어버리기엔 스스로를 실망하게 되는 게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일단 저는 놨습니다. 1년도 채 안 된 시점에 놨습니다. 벌써 11년이나 됐다는 사실이 시간이 빠르구나 싶어요. 그렇다고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제게 아무것도 아니지는 않습니다. 정말 가끔 생각 나면 찾아보고 혼자서 추모하고 합니다. 그건 돌아가신 제 가족들도 마찬가지구요. 장례식에서 항상 잘 보내드리라고 하는데, 그건 제가 그러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보내지 않으면 보낼 수 없다. 스스로에게 달린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좋든 싫든 누가 잘했든 못했든 억울하든 아니든 갔으면 보내야 합니다. 말은 쉽죠, 말은 참 쉽습니다. 이제부터 아무것도 아니라니요.
일본에 다녀올 때 제주항공을 이용했습니다. 비행기 시간 대가 그게 제일 좋았어요. 제주항공을 이용하는 게 아무것도 아닐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작년 말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게 하더라구요. 비행기에서 내리곤 그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찾아보려다 아직까지 보류하고 있긴 합니다만, 2주 정도 흘렀는데도 무언가 남 일만 같지 않습니다.
내가 놓아버리면 진짜 마지막인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가지고 있는 걸 보면 제가 남들한테 놓으라고 말할 처지도 아닌 것 같아요. 어떤 건 죽을 때까지 매달고 가야 할 수도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다는 말은 생각하기 싫다는 말일까요, 아닌 것 같은데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답이 없는 문제라는 걸까요. 누군가에게는 가치 있는 일이 제겐 가치 없다는 말일까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시간이 지나면 나 이상으로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역사가 되어버리면 그곳에 감정이 있을 곳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역사에 감정을 쓰게 된다면 그것을 둘 곳은 내 마음이지 어떤 사회가 되진 않는 것 같습니다. 개인의 마음이 모이면 같은 생각을 했다 회의감이 들어 생각을 그만둡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나와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있는지 저는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내가 모자라서이기도 하고 남이 이해하지 못해서이기도 하고. 물론 저는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하고 무언가 같이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무언가를 함께 한다고 착각하기 위해서 공통의 일을 만들어버리는 거죠. 제 생각엔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고 이 이상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연대 같은 말은 모두 말도 안 되는 말이고 웃긴 이야기고 유치하고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밖을 넘어가지 못하니 사회 면에 실리는 일들이 개인을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세월호를 자기 부모님의 장례보다 오래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럴 수는 있는 거겠죠. 역시 가치평가는 딱히 안 합니다. 하지만 뭔가 역시 추모를 해야겠습니다. 그렇다고 리본을 달지는 않지만, 노래를 듣거나 소설을 읽지도 않겠지만. 방법을 신경 쓰는 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장례식에서 절할 때 왼손이 위로 가는지 오른손이 위로 가는지 상주가 그걸 지켜보면서 저희 아버지/어머니 앞에서 그쪽 손이 위로 가시면 안 돼요 하는 사회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향 피우고 절하고 맞절 하는 것 정도는 아무래도 하겠지만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놓지 않았기 때문에 놓아버린 저 또한 이렇게 다시 한 번 떠올리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역시 아무 일도 아닌 게 아니구나 하고 확인했던 게 조금 인상적이어서 무엇인가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 방식이 이렇게 툴툴댄다는 게 역시 성격 나쁘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고야 여행 후기 w/ 키미시마 오오조라, 코바야시 아이카 (1) | 2025.04.08 |
---|---|
250328 (0) | 2025.03.28 |
뉴진스와 NJZ(엔제이지) (0) | 2025.03.23 |
[스포주의] 오징어게임2 후기 (0) | 2024.12.27 |
오블완 챌린지라는 게 생겼네요 (6) | 2024.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