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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구성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드럼                                                       키보드

    트럼펫, 트럼본

         베이스           선풍금(아카네)           일렉트릭 기타

오픈 릴(좌)                                                        오픈 릴(우)

 

 

즛또마요를 좋아하게 된 건 처음 데뷔하자마자, 초침을 깨물고 뮤비가 유튜브 알고리즘에 떴을 때 -아마 당시 100만도 안 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였습니다. 그럼에도 제겐 첫 라이브였습니다. 이번이 첫 내한이기도 했고, 일본에서 본 적도 없었거든요. 첫 라이브가 내한이라 뜻깊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든 생각을 하나로 요약하자면 '즛또마요는 라이브형 밴드다'라는 겁니다. 근거는 2가지에요. 하나는 밴드 이름에 걸맞게 한밤중을 연상시키는 무대 구성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독특한 실연 악기 구성이라는 점입니다.

 

'계속 한밤중이면 좋을 텐데'라는 이름과 프론트 아카네의 신비주의 컨셉트는 그룹의 핵심입니다. 여태까지 라이브 영상을 보면서 '신비주의 컨셉을 위해 얼굴이 안 보이도록 무대를 어둡게 꾸미는구나' 하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것도 사실이지만, 무대를 보면서 느꼈던 건, 상반신을 가리는 조명이 은은한 별빛 같고 어둠 짙은 무대는 마치 한밤중에 있는 것 같다는 겁니다. 그리고 무대가 끝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니, 저도 모르는 새 '계속 한밤중이면 좋을 텐데' 하고 혼잣말을 뱉어버렸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즛또마요라는 이름, 밴드의 코어는 라이브 스테이지에 있구나 처음부터 설계됐구나 깨달았습니다.

 

즛또마요의 공식 소개 페이지를 보면 '불필요한 가전제품 처리에 곤란을 겪고 있는 분들을 위한 밴드입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음원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오픈 릴 테이프와 선풍금(선풍기와 가야금 할 때 금을 합친 표현, 선풍기에 자성을 띄는 무언가를 덧붙여서 팬 중심으로부터 피크 비슷한 걸 가까이 갖다 댈 수록 낮은 음이 나는 악기 같았습니다. 소리는 이름처럼 현악기 비슷하게 납니다. 기타 밴딩 주법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이 시선을 빼앗습니다. 흑인 음악 기반 사운드라 브라스가 들어가는데, 독특하게도 색소폰이 아니라 트럼펫과 트롬본이었습니다. 직접 만든 악기들은 음원을 듣고 알긴 어렵기 때문에, 또 라이브 퍼포먼스가 굉장히 재미있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도 라이브형 밴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이브에서는 비주얼 연출이 의외로 꽤 중요합니다. 공연 많이 다니는 분들은 아실 텐데, 뒤에 어떤 영상을 까느냐에 따라 공연이 밋밋해지기도 하고 풍성해지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즛또마요의 라이브 연출은 굉장했습니다. 데뷔 때부터 함께 했던 '니라'와 '우니구리'라는 캐릭터가 계속 등장하는데, 곡 별로 몇 쇼트로 구성되지 않은 영상들이지만 밴드의 캐릭터성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좋았습니다. 이것보다 더 좋은 건, 영상 좌측 하단에 샤모지(응원 도구) 응원법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사이버 세계관 영상에 현장 참여형 요소가 붙으니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곡 '저 녀석들 전부 동창회'에서는 '샤이한 소동'이라고 명명한 제자리 점프를 요청했는데, 이때는 지뢰찾기 이미지를 빌려 와 점프 카운트 다운할 때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라이브 영상 보면서, 그리고 실제로 라이브를 보면서 어떻게 아카네 상반신 위로 암영 처리를 한 걸까 궁금했습니다. 답은 역시 조명이었습니다. 일단 아카네 앞에서 아카네를 비추는 조명이 없습니다. 대신 바로 뒤에 하나가 있는데, 이 강한 조명이 역광을 만들어 얼굴을 가립니다. 무대 후방 상단에도 무대 전체를 비추는 조명이 6개 있었는데, 이중 가운데 아카네가 있는 곳을 비추는 조명 2개는 다른 조명 4개에 비해 밝기가 상당히 약했습니다. 그리고 아카네 후방에 있는 조명들이 아카네 쪽을 비출 때는 모두 아래에서 위를 비추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미러볼 조명도 종종 사용됐는데, 이 미러볼이 직접 발광하는 게 아니라 미러볼을 중심으로 4개의 조명이 미러볼에 빛을 쏘면 그게 퍼지는 식이었습니다. 이것 또한 미러볼이 아카네 바로 위쪽(근데 엄청 위)에 있다 보니 아카네가 있는 부근은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빛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라이브 정보를 찾다가 알았던 게, 아카네 허벅지 이야기가 많더라구요. 이거를 농담이나 성희롱으로 지나갈 수도 있지만(솔직히 몇몇은 좀 그렇긴 합니다만 뭐 상처주려고 하는 말은 아니고 제가 당사자도 아니니...) 이유가 다 있었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아카네 후방에 있는 아래에서 위로 비추는 강한 조명이 정확히 허벅지 부근을 비춥니다. 그 위를 비추면 상반신이 보이니까 아래쪽으로 낮춘 거겠죠? 그러다 보니 하체에 빛이 들어오는데, 이 상태에서 타이트한 니 하이를 신어 절대영역을 강조합니다. 진짜 거짓말 안 하고 무대와 가깝지 않은 상태에서 아카네를 보려고 하면 절대영역 테두리 라인에 생긴 하이라이트 밖에 안 보입니다. 아무래도 빛이 하체를 강하게 쏘고 있다 보니 의도적으로 포인트를 주기 위해 이런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 즛또마요가 애니메이션 MV의 '니라'로 기억될 수도 있었겠지만 이런 선택을 통해 실제 인물인 아카네에게도 시선이 이끌린 게 아닌가 생각해봤습니다.

 

아카네의 보컬은 비음이 조금 섞여 있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좋게 말하면 음원보다 귀여웠고, 나쁘게 말하면 고음이 살짝 찢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높은 키를 못 내는 것도 아니고 -고음에서 음정이 살짝 흔들리긴 하지만- 음정보다는 이 찢어지는 느낌이 신경쓰였어요. 근데 뭐 듣다 보면 적응 되기도 하고, 곡에 따라서는 크게 드러나지 않기도 했습니다.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즛또마요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라이브도 좋아할 겁니다. 일단 나부터 ㅋㅋ

 

* 2024.07.28. 추가

Amazon music과 트위치에서 중계하는 후지락 공연을 보면서 생각을 고쳐 먹었습니다. 라이브 잘하네요. 제가 봤던 날 컨디션이 조금 안 좋았거나, 은혜 갚고 싶다는 말처럼 후지락에서 120%를 보여준 건진 몰라도, 빠른 시일 내에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몇몇 곡은 보컬이 끝난 시점(음원의 막바지에 다다른 시점)부터 즉흥연주가 있었습니다. '공부 해 둬' 같은 경우에는 마지막에 악기 다 때려 부수는(?) 퍼포먼스가 있었고, 선풍금 솔로로 곡을 마무리하기도 했습니다.

 

중간 중간 쉬는 타임마다 폰인지 패드에 적어 온 한국어 멘트를 읽어줬습니다. 인상에 남았던 건 '하무 혼또니 오이시이'랑 육개장 사발면 먹었어요 다음에 튀김우동 먹었어요 했는데 객석에서 맛잘알이라고 감탄했던 거, 인스타그램에서 한글로 코멘트 달아줘서 라이브 올 수 있었다(아마 해외에서 라이브 할 용기를 받았다는 거겠죠), 그리고 '마타네 아카네'가 적힌 슬로건 이벤트 받고 찐감동받아서 다시 오고 싶다고 했던 거(나도 다시 올 테니 너네도 일본 오라고도 했음) 정도네요.

 

슬로건, 부채, 스티커 등등 무료 나눔을 많이 받았습니다. 나눠주신 분들께 정말 고맙다는 얘기를 드리고 싶네요. 나름 성공한 밴드고 데뷔한 지 꽤 됐는데 첫 내한이다보니까 다들 엄청 준비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코스프레하신 분들도 지나가다 종종 마주쳤고요. '마타네 아카네' 문구 너무 좋았습니다. 즛또마요 곡 대부분이 의미보단 발음을 생각한 말장난으로 구성되어있다는 점에서 즛또마요에게 라임은 너무 중요한 건데, 다시 보자는 의미도 담겨 있으니까요. 뭐 슬로건에 '마타네' 집어넣는 건 흔하고 마침 이름도 아카네니까 당연했을 지도 모르겠는데, 그렇다면 다시 내한하는 게 필연이라는 건가? (농담)

 

공연 베스트 트랙은 '미러 튠'을 고르겠습니다. 3 2 1이랑 yey 떼창이 너무 좋았습니다. 6번 정도 총 쐈던 거 같은데 이것도 매번 어디를 쏠까 하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잔기'와 '저 녀석들 전부 동창회'도 좋았습니다. 특히 동창회는 막곡에 점프도 하고 떼창도 해서 너무 좋았는데 약간 치트키 같기도 하고 (곡 다 좋았지만) 처음으로 압도적인 느낌을 받았던 게 미러튠이었습니다.

 

+ 마지막에 '신세 지고 있습니다' 라는 가삿말에 맞춰서 단체로 1분 여간 인사한 게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레아이서브, 바카쟈나이노니 못 들어서 아쉬웠습니다. 특히 나레아이서브는 이번 공연 때문에 나온 컴필레이션 앨범(??) 듣다가 너무 좋아졌는데 라이브에서 안 하더라구요.

 

공연 보면서 소름 3번 정도 돋았던 것 같습니다. 도파민 뿜뿜했다는 뜻이죠. 원래 공연 직전에 맥주 한 캔 개빠르게 마시고 하이한 상태에서 보는 편인데 이번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술은 스킵했음에도 너무 좋았습니다. (알코올 없이 이 정도의 도파민을?) 올해 10팀이 넘는 가수들의 라이브를 봤습니다. 더 좋아하는 아티스트들(뉴진스 포함) 공연도 많이 봤지만 이 공연이 지금까지 올해 베스트입니다. 공연이 음원의 연장선상이나 실연의 동의어가 아닌 그 자체만의 매력이 너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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